등굣길, 사랑을 그리는 색연필

40넘어 사랑을 배우다

by 작은 불씨
123c21c.jpg?type=w773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 것 같다.

매일 아침 아이를 잠에서 깨우고 같이 세수하고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옵니다.


잠에서 깨울 때 보통 전 30분 정도 명상과 호흡을 해야 하는데 등굣길이다 보니 그건 너무 힘들어서 10분 정도 먼저 일어나서 아이가 잠에서 기분 좋게 깨고 정신을 좀 차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같이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각자 옷을 갈아입고 아이 머리를 빗겨주고 집을 나서 학교로 가는 그 시간은 길어야 10-15분 남짓하지만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 학교에서의 이야기 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교문을 지나 아이를 학교로 보낼 때는 전에는 손을 흔들고 잘 다녀오라고 말만 했더니 너무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아이가 혼자 학교로 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해서 등교 이틀째부터는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안아주고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고 오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저에게 뽀뽀를 해주고 "아빠, 사랑해" 라고 말해주고는 돌아서 교실로 들어갑니다.


이중 무엇도 서로 약속하고 교육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반복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렇게 사랑을 배우는구나.'


전 어린 시절 아주 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혼자 자랐어요.

부모님은 일찍 이혼했고 유복했지만 이혼 이후 어머니는 절 키운다고 항상 일을 나갔고

8살 때부터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거의 혼자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에게 사랑이란 것은 그저 뭔가 그립고 혼란스럽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거였어요.


그리고 사랑이란 것을 하게 돼서도 항상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고 계속 상대에게 다 주고 맞춰야 하는 것 같고 뭔가 지금 생각하면 균형이 맞지 않는 멘탈 상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정말 많이 변하고 코로나라는 힘든 시기를 겪고 다시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전체적으로 조금씩이지만 균형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실 대답하기 참 곤란했어요.


"헌신이지.", " 맹목적인 거야", "주고받는 거야", "희생이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야." 같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오늘 제가 느낀 것은 이래요.


각자의 사랑이란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받은 재료들을 내가 그려 놓은 것


그래서 제가 나쁜 재료를 주면 아이는 나쁜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아무리 예쁘게 그리려 해도 나쁜 사랑의 그림을 그리게 될 거예요.


그렇다 보니 모두의 사랑에 대한 표현과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때 참 대답하기 애매한 단어라고도 생각이 돼요.


얼마 전에는 제가 아이를 매일 아침마다 깨워준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저는 아침에 일을 보고 있어야 해서 딸아이에게 "엄마 좀 깨워줘" 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자기를 깨우는 것과 똑같이 가서 엄마를 깨우는 거예요.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오늘 있을 일들 중 즐거울 일들을 이야기해 주며 옆에서 보는데 너무 신기하고 웃겼어요.


결국에는 아이는 부모의 행동과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들의 재료를 모아 자신만의 세상과 사랑을 조금씩 그려가고 있나 봐요.


그래서 저는 매일매일 더 좋은 재료를 주려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우리 딸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아빠가 준 재료는 우리 딸에게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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