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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Oct 27. 2023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사립학교 지원서를 쓰면서 육아 철학을 고찰하는 중입니다 

내년에 아이들을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볼까 고민 중이다.

내년이라고 해봐야 학기는 9월에나 시작하는데 연말까지 지원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헉’스러운데 지원서 내용이 거의 대학원 뺨치는 수준이다.


학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5가지 요소(지적, 사회적, 신체적, 윤리적, 감정적)를 주고,


1. 5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네 아이에 대해 설명해라

2. 너네 가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2가지를 꼽고, 이유를 말해라

3. 네가 생각하는 균형 잡힌 교육이란 뭐냐?

4.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지 말해봐라

5. 아이에 대한 너의 꿈과 희망을 말해봐라


나름 많이 고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나에게 엄마는 늘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마라’고 말하는데 에세이 질문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글이기에 망정이지 구두 면접이었으면 그야말로 죽 쑬 뻔했다.




돌아보면 최근 내가 아이들을 두고 고민하고 갈팡질팡 했던 내용들은, 

주원이가 점심 도시락을 너무 많이 남겨오는데 뭘 싸줘야 잘 먹을까?

평일엔 어쩔 수 없이 아침 점심이 부실하니까 저녁은 제대로 먹이고 싶은데 그러자니 식사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데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학교 갔다 와서 자기 전까지 시간은 한정적인데 학습적인 부분은 전혀 안 챙겨도 될까?

프리스쿨 체류 시간이 짧고 놀이 기반이다 보니 미국에 살고 있음에도 다민이의 영어 노출 양과 질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내년에 Pre-K 가기 전까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려줘야 할까?

한때 두 아이 모두 완벽한 분리 수면이 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다가 안방으로 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온 게 일 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의식주와 관련된 물론 중요하지만, 다소 저차원적인 것들이거나 누가 K맘 아니랄까봐 학습적인 부분에 치우쳐있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여러 생각들이 마치 파편처럼 둥둥 떠다니다 때때로 머리를 칠 뿐, 무엇 하나 정리되거나 구체화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많이 놀아야 해. 혼자도 잘 놀고, 친구랑 같이도 잘 놀고, 잘 놀 줄 아는 것도 능력이고, 그건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거니까.

그저 시험을 잘 보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맹목적으로 공부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별 도움이 안돼. 배움의 기쁨을 알게 해 주고, 아이가 관심 갖는 주제나 분야가 있다면 최대한 지원해 주자.

이것저것 배우고 여기저기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솔직히 그간 자잘한 고민은 많이 하면서도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같은 굵직한 주제는 일부러 피한 면이 없지 않다. 주변만 봐도 나무랄 데 없는 부모의 자식이 빌빌대며 살기도, 그다지 잘한 게 없어 보이는 부모한테서 대단한 자식이 나기도 한다. 본인이 타고나는 것도 크고, 살면서 부모 외에 여러 사람이나 사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조건 자식이 부모가 키우는 대로만 큰다고 생각하면, 그 책임의 무게가 무겁고 무섭지 않은가?



그래도 이참에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고 엮어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부모, 그리고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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