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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Feb 24. 2019

이모님 찾아 삼만리

'이모님 복은 여자의 3대 복 중 하나'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

아이가 만 17개월이 된 지금까지 산후도우미부터 시터까지 소위 ‘이모님’을 꽤 여럿 겪었다. 시터는, 엄마들 사이에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모님 복은 여자의 3대 복 중 하나’라는 말을 있을 만큼 아이와 엄마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다행히 지금은 너무 좋은 분을 만나 함께 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누구 못지않은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 




조리원을 졸업하고 처음 만난 입주 산후도우미는 일단 게을렀다. 사실 시터는 계약조건에 따라 다른 일 일절 안 하고 아이만 돌보는 경우가 있지만, 산후도우미의 업무에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산모를 케어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청소, 빨래와 수유부를 위한 식사 준비를 해줘야 한다. 근데 이분은 늘 밥시간이 다되도록 미적대다 우리 엄마가 전날 가져다준 반찬과 국을 간신히 데우기 바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4일 만에 잘리기 전까지 청소기 한 번을 안 돌렸고, 아기가 잘 때에도 집안일은 나몰라가 그저 함께 잘 뿐이었다. 거기다 왜 그렇게 전에 일하던 집 자랑을 하는지... 누구누구 회장님 딸 집이었다는 둥 마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여기는 듯했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하루 만에 교체했겠지만 이때만 해도 미숙했던 난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리고 꼬박 나흘을 속을 끓인 끝에 업체에 연락을 취했다. 연락은 다소 늦었지만 불만사항을 단호하게 전한 덕인지 교체된 산후도우미는 깔끔하고 일을 잘하는 분이었고, 사실 이분을 연장해서 쓰고 싶었지만 집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이후에도 우리 집에는 마음에 안 드는 두 명의 시터가 다녀갔다. 구인 사이트와 업체를 통해 여러 사람을 소개받고 면접을 보는 동안 ‘경험이 많아서 노련하지만 그만큼 요령도 피우는 사람’과 ‘경험은 다소 부족하지만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 중에는 후자가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으로 했던 선택들 때문이었다. 어차피 시터 일이라는 게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고, 대부분의 후보가 자녀를 두 명 이상 낳아서 기른 50~60대 여성이었기 때문에 ‘(시터) 경험 부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우선, 당시 우리 아기는 갓 50일 정도 된 아기였고, 미숙한 시터의 손놀림을 초연하게 지켜볼 만큼 나는 대범한 엄마가 아니었다. 또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식당을 하다 이 일을 막 시작했다는 시터분은 비교적 젊고 건강해 보였다. 엄마(나)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는 강했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녀에겐 알려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심지어 수차례 반복해서 알려줘야 했다. 힘 좋은 그녀의 손길은 너무 거칠어 그녀가 아기를 트림시킬 때마다 난 가슴을 졸였다. 사흘이 지나도 그녀에게 아기를 맡기고는 도무지 외출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손주 두 명을 봐주고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외모가 고운 시터는 나를 정말 ‘딸처럼 대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난 우리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면서 함께 내 아이를 키워주는 시터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족 시터의 경우 ‘사모님’ 호칭을 고수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누구 엄마’ 호칭도 오케이고 말을 편하게 하는 것 자체에도 크게 반감은 없다. (지금 이모님과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우리 집에 아기 보러 놀러 온 할머니처럼 내가 젖 먹이고 트림시키는 걸 멀뚱히 쳐다만 보고, 내가 밥 먹다 말고 우는 아기를 달래는 동안에도 본인은 먹던 밥을 계속 먹는 건 곤란했다. 어찌 됐든 돈을 주고 시어머니 모시듯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안녕. 




천신만고 끝에 마음에 드는 시터를 만나 5개월여 함께 하다가 그분의 이사로 다시 한번 분노와 실망의 면접 릴레이를 거친 후에 지금의 이모님을 만났다. 이래저래 스무 번가량의 면접과 네댓 번의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우선, 면접으로 좋은 사람 알아보기는 참 힘들다는 점은 인정한다.  

길어야 30분 이내에 끝나는 면접에서 진짜배기를 알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나 경험 많은 노련한 시터가 마음만 먹으면 젊은 아기 엄마 하나 속이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리 똑 부러진 척 예리하게 촉수를 곤두세워봤자, 어리숙하고 절박한 아기 엄마는 게임이 안된다. 그리고 면접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기술에 집착하다가 때론 자기 어필에 익숙하지 못한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 (우리 이모님이 그런 경우였고, 낯을 가리고 조용하신 성격 때문에 하마터면 놓칠 뻔한 후보였다) 


그래도 면접을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면접을 볼 때는 이런 질문들이 그나마 유효했던 것 같다. 


 - 웬만하면 아이와 직접 대면할 수 있게 할 것! 

   기회가 되면 기저귀를 갈거나 안아볼 수 있게 하고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면 좋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똑똑하고 예민해서 본인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금세 알아차린다. 뭐 잠시 잠깐 다정하고 따뜻한 시늉을 하는 면접자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정말 어떤 식으로도 사전에 판별하기 어렵다. 

 - 사는 곳은 어디인지? 출퇴근 교통편은 괜찮은지? 

   직장인들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출근을 했을 때, 컴퓨터를 켜기 전부터 얼마나 지치는지, 그럴 땐 정말 상사의 눈을 피해 멍 때리고 괜히 화장실만 들락거리고 싶지 않은가? 마찬가지다. 너무 멀거나 교통편이 불편하지 않은 곳에 살아야 우리 아이를 돌보는데 에너지를 쓸 수 있다.  

 - 이전 집에서는 얼마나 일했는지?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지?  

   한 군데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이 집 저 집 전전하는 시터에겐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엄마들 사이에는 '블랙 시터'라는 말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레퍼런스 체크는 필요하다. 본인 말만 들어서는 믿을 수 없다고 전집 연락처를 받아 확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난 이렇게 해본 적은 없다. 

 

어쨌든 나는 면접 과정에서 마치 소개팅에 나온 상대를 살피는 듯한 마음으로, 단정한 용모와 표정, 인상이 선한지, 말투가 퉁명스럽거나 행동이 거칠진 않은지 등을 두루 보면서 '인간적 매력'을 찾았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3~5일 정도의 수습기간을 가지는 거다. 쌍방 합의 하에 공식적인 수습기간을 갖는 게 어렵다면, 어차피 임금은 후불로 지불되기 때문에 일단 일을 시작하되, 내심 '며칠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라고 생각하길 권한다. 


이 모든 길고 험난한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번에도 역시나!) 엄마의 마음가짐인데 


좋은 시터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조건과 적당한 페이를 지불할 의사만 있다면, 사람은 구할 수 있다. 그러니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조급한 마음만 앞세우거나 '이 정도의 사람도 흔치 않다' '이분이 가고 나면 난 끝장이다' 생각하며 절절매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   


또한 채용은 신중하게 해고는 신속하게 할 것을 권한다. 여러 명의 면접자를 두루 잘 살핀 후에 나에게,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신중하게 채용하는 것만큼이나,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겪어서 찝찝하고 이상한 사람이 이틀, 사흘 지난다고 나아지는 법은 결코 없더라. 내 마음에 걸리는 어떤 점은 대체로 점점 부각되고 정도가 심해진다. 굳이 엄마 마음 졸이고 아이 고생시키면서 질질 끌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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