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당신에게
몇 달 전에 결혼을 앞둔 사촌동생 커플을 만나고 와서 '결혼이란?' '결혼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결혼한 커플이 잘 살기 위해서 중요한 건 뭘까?'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쳤더랬다. 한 번쯤 잘 정리해 글로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따뜻한 봄, 결혼 성수기가 왔다. 이제 웬만한 지인들은 결혼을 한지라 예전처럼 매주말 결혼식을 다니며 출석도장을 찍을 일은 없지만, 한때는 나도 봄가을이면 축의금을 내느라 통장이 텅장이 되곤 했다. 남자친구마저 없을 때면 '와, 다 가는데 나만 이러고 있네' 절망하고 위기감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결혼도 안(혹은 못)하고 있을 땐 나만 빼고 온 국민이 결혼하는 느낌, 굉장히 소외되고 뒤쳐지는 기분, 소위 적령기를 놓치면 이대로 마흔까지 훅 가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허참, 왜 그랬을까? 부모님은 적어도 내 눈으로는 싸우는 걸 목격한 적이 없는,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사이좋은 부부였고, 그 때문인지 나는 ‘좋은 사람만 나타난다면’ 스물다섯에라도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고, 나는 분명 아주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저 타고난 기질이 소심한 모범생이라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는, 즉 소신과 과감함을 요하는) ‘비혼’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잘할 자신도 있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젊고 어린 나, 미혼시절의 나에게 결혼은 가능한 한 빨리 해치우고 싶은 과제였다. 나의 생각과 계획과는 무관하게 결국 서른한살을 먹고 나서야 결혼을 하게 되었다지만, 뭐 어쨌든.
‘야, 결혼 뭐 그거 내가 해봐서 하는 말인데 별거 없어’라든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 일단 그냥 해봐’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뭐 그래 봐야 결혼한 지 만 3년이 채 안된 갓 새댁 딱지나 떼었다고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내가 결혼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게다가 설사 지금 좀 안다고 한들, 앞으로 어떤 험난한 길이 펼쳐질지 얼마나 변화무쌍한 날들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뭘 장담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5년, 10년, 30년 뒤에 보고 웃으면 어떠랴. 인생은 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연속인걸.
우선, 좋은 짝을 만났다는 전제 하에 결혼은 좋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 즐거운 이벤트 같은 낭만적인 연애는 끝났지만, 배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옆을 지키는 짝꿍이고, 평생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 할 동반자다. 기쁜 일,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슬프고 화나는 일, 추한 모습까지 보고 보여주고, 먹고 자고 싸는 시시콜콜한 일상도 공유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고 삶을 보다 충만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여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게 현실이다.
물론 과도기를 살고 있는 요새 남자들의 삶도 쉽진 않다.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온전히 책임지면서 살뜰하게 아버지를 내조하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지만(심지어 엄마 세대에는 맞벌이 가정에서도 가사분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결혼하고 나니 이게 웬걸? “나도 너만큼 배웠고 똑같이 돈을 버니 내가 빨래하면 네가 청소하고 내가 요리하면 네가 설거지해라, 설에는 너네 집에 갔으니 추석엔 우리 집에 가야겠다” 목청 높여 권리를 주장하고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불합리하고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는 아내가 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진 못해도 머리로 외우면서 열심히 요새 남편 역할을 충실히 해보지만 본가와 아내 사이에서 하는 줄타기는 늘 아슬아슬하게 마련이다.
그래도 여전히 결혼 이후 더 피곤해지는 쪽은 여자다. 맞벌이라도 집안 살림에 대해 오너십을 가지는 건 대체로 여자다. 퇴근이 좀 더 빨라서, 그나마 요리를 좀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오너십을 가지고 남편에게 업무를 분장해주지만, 알다시피 회사에서도 오너보단 월급 받는 쪽이 마음이 편한 법! 꼭 그런 구도가 아니었던 부부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임신, 출산, 모유수유 같이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부부의 다이내믹스는 변하기 일쑤다. 이 외에도 여전히 사위는 평생 손님 대접을 받는 반면, 며느리는 '새로 들어온 일손'으로 여겨 설거지 안 시키면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세상에서(사위에게 설거지 안 시킨다고 좋은 장모라고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여자는 결혼 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와 남녀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쓰다 보니 결혼의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됐지만, 사실 앞에 언급한 '좋다'라는 간단하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표현은 보기보다 파워풀하다. 웬만한 고난과 역경을 무사히 극복하게끔 하는 동력이기도 하고, 결혼 전의 라이프에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도 함께 겪는 와중에 즐거움이 되곤 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한 뼘 성장한 개인과 견고해진 팀워크를 확인하면서 버라이어티하고 다이내믹한 삶을 꾸릴 수 있달까?
‘좋은 짝을 만났다’는 어마 무시한 전제가 붙긴 하지만, 그리고 이건 또다른 글 한편이 충분히 나올만한 소재지만, 어쨌든 그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추천합니다. (다만, 결혼을 할 누군가를 찾아서 나의 상대라는 빈칸에 집어넣고 감행할 만큼 매력적인 제도는 아니니, 누군가를 만났을 때 결혼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