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일기] 두 언어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들

미국에서 이중언어자 아이 키우기

by 하우영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한국처럼 ‘레테 전쟁’, ‘7세 고시’를 치르거나 ‘수학 선행을 얼마나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고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은 ‘바이링구얼, 즉 이중언어자로 키우기’다.




이중언어자로 키울 것이냐, 말 것이냐 를 고민하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쓰는 이중언어자가, 그 숫자가 많지 않고 때문에 귀하며 (굳이 따지자면) 몸값이 높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단순한 몸값을 떠나 살면서 훨씬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이든 미국이든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이중언어자로 키우고 싶다는 나의 마음에는 큰 고민이 없다.



관건은 어떻게 이중언어자로 키울 것인지이다.


미국에 온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지만, 날마다 이중언어자로 키우는 게 어렵다는 걸,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걸 깨닫고 있다.

일단 주변만 봐도 중학생 이후 유학을 온 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에 이민을 왔는데 한국말을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읽기, 쓰기까지는 갈 것도 없고 말 자체가 어눌하거나 흔히 말하는 교포 억양이 강하게 드러난다. 간혹 말을 잘하는 1.5-2세대는 여름마다 한국에 나가 학교를 보낸다거나 하는 엄마의 노력이 있었거나,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배우자로 만났거나, 한국 기업에서 혹은 한국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한국말이 확 는 정도가 있는 듯하다.


시대적인 차이도 분명 있을 거다. 이전 세대만 해도 대부분의 1세대는 먹고사는 게 바빠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굳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면서 한국어를 가르칠 만큼 한국의 위상이 별 볼일 없었으니 말이다. 본인들과 달리 자식들은 영어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히려 영어만 쓰도록 독려한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자면, 현재 우리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은 순항 중이다.


한국에서 워낙 책을 많이 가져와서 그런지, 읽어달라고 들고 오는 한글책과 영어책의 비중이 아직까지는 5대 5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주원이는 한국 초등학생 친구들이 하는 독서논술 책을 하루에 몇 페이지라도 시켰더니 읽기와 쓰기도 어느 정도는 되는 편이다. 다민이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이제 막 파닉스를 배우기 시작해 내년 여름에나 한글을 가르쳐볼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 다녀온 지 벌써 네 달이 지나고, 다민이까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둘이 놀 때는 8할이 영어다. 주말에는 좀 나은데 학교를 다녀온 평일이면 특히 주원이는 아예 회로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 “주원아, 집에서는 한국말로 말하기로 했지?” 말해도 그때뿐이다.


며칠 전에는 “너는 한국 사람이잖아”라는 내 말에 “하지만 계속 미국에 살 거잖아” 되묻는다.

“그래도 엄마는 주원이가 지금처럼 계속 영어도, 한국말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말하고 나서도 부끄러운 엉성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몇 년 뒤 시민권을 받고 나면 어쩌려고? ‘그랬으면 좋겠다니’ 그야말로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그 자체 아닌가?


“한국말로 말하지 않으면 엄마는 대답 안 해줄 거야” 으름장을 놓으니 그제야 애써가며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이야 순진하고 착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으름장에 반응하지, 좀만 더 크면 ‘그럼 말하지 마라~ 나도 엄마랑 말 안 해’하고 말겠지?




때로 이중언어자가 좋고 말고를 떠나 저 쪼그만 머리로 두 가지 언어를 다 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안쓰럽기도 하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같이 열심히 해보자. 한국말로 하느니 엄마랑 말 안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엄마도 더 탄탄하고 달콤한 논리로 무장해서 어르고 달래 볼게. 그리고 영어는 몰라도 엄마가 한국말은 좀 하니까 멋들어진 한국어 구사자가 될 수 있게 도와줄게. 사랑해, 우리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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