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일기] 대자연의 두 얼굴

LA 산불을 지나며

by 하우영

지난 화요일, 아이들이 2주 하고 하루 되는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첫날이었다. 남편은 오피스로, 아이들은 학교로 보내고 홀가분한 자유부인이 된 나는 간만에 취미생활(aka 정리정돈)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봤는데 저 멀리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시커먼 연기가 보였다. 현재 전 세계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상 초유의 LA 산불 중에서 가장 크고 많은 피해를 일으킨 팰리세이드 산불의 시작이었다.

불이 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1월7일 오후
그날 밤에는 집에서도 불이 보였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무사하다. ‘무사하다’의 사전적 의미(1. 아무런 일이 없다, 2.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를 따져보면 ‘무사(無事)’한 건 아니지만 괜찮다고 해야 할까. 집은 가장 가까운 대피 경고 지역으로부터 불과 5마일도 채 안 떨어져 있고, LA 전역의 공기 상태가 매우 안 좋으며, 아이들은 개학한 지 이틀 만에 휴교를 했다(가 이번 주 월요일에 다시 등교를 했다).


감히 이 상황에 대해 불평할 생각은 없다. 불과 며칠 전 아이들과 하이킹을 했던 공원이 불에 타버렸다. 한 번쯤 갔던, 적어도 지나갔던 식당과 카페들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었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흔적조차 안 남고 타버린 집이 내 집일 수도 있었다. 불이 우리 집보다 조금 위쪽에 위치한 동네에서 시작된 건, 강한 돌풍에 미친 듯이 불길이 번졌음에도 우리 동네까지는 닿지 않은 건, 그저 이번에는 내가 운이 좋았던 거라는 걸 안다.


자칭 서울쥐인 나는 2년 남짓 LA에 살면서 자주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때로 경이로움을 느꼈다. 자원도 많은데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축복받은 땅을 가진 이 사람들이 부러워 시샘이 나기도 했다. 허나 이번 참사를 통해 나는 자연이 얼마나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지, 그런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팰리세이드 산불은 불이 시작된 지 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진화율이 18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그 와중에 또다시 전해진 강풍 예보가 야속할 따름이다.

부디 불길이 더 번지지 않고 이대로 잘 잡히기를. 더는 다치거나 피해 보는 사람 없이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기를. Pray for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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