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관계 맺기
지난 금요일, 1학년 엄마들의 저녁 모임이 있었다.
한 마디로? 쉽지 않았다.
플레이데이트처럼 일대일로 만나거나 친한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만날 때는 괜찮다가도 이런 규모가 큰 이벤트나 파티에 다녀오면 한 번씩 낙담을 하게 된다, 나의 언어와 사회적 자아 때문에.
우선 이번 모임은 금요일 밤 펍(pub)에서 이뤄졌는데 너무 시끄럽고 잘 들리지도 않았다. 옆 사람, 맞은편에 앉은 사람, 서너 명씩, 그러다 다 같이, 대화 상대도 계속 바뀐다. 그렇다고 일관된 주제가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널을 뛴다. 예전에 엄마가 친구 모임이나 학부형 모임에 다녀오면 “엄마, 아줌마들이랑 무슨 얘기했어?” 물었을 때, “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등 오만가지 얘기를 했지” 하던 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문화적 배경 차이도 크고, 언어도 부족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모임을 가도 자연스럽게 주류에 속했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우영한테 말로는 안 된다”, “말이 엄청 빠른데 발음이 정확해서 아나운서 같다”,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같은 말 잘한다는 칭찬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스스로 너무 찌질이 찐따처럼 느껴졌다. 잘 못 알아듣고, 느리게 반응하고, 유머는 고사하고 누가 질문하면 답하기에 급급한 내가 답답했다.
그럼에도 난 괜찮다.
답답한 건 사실이고 더 잘하면 좋았겠지만 그 마음이 ‘서러워서 못 살겠다, 한국 가야지’가 아닌,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해야지’로 귀결되는 걸 보면 확실히 괜찮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 높은 인간이란 걸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게다가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포기하고 감수하는 것만큼 누리고 있는 것들,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학부형 관계에 대해서도 깨달은 바가 있는데
첫째, 엄마가 뒤에서 죽을 쑤건 뭘 하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거다. 똑똑하고 친구 관계도 좋은 야무진 내 새끼들을 믿으면 학부형 관계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다.
둘째, 간지 나는 첫인상을 심어주거나 파티에서 매력 발산은 못해도 계속 만나고 대화하고 역사를 쌓으면 좋은 관계는 만들어진다. 결국 내가 괜찮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들은 알아보게 되어 있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도 늘고, 문화도 익숙해지고, 관계도 단단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