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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ul 07. 2020

생각의 파편들

1년 만에 돌아온 브런치

어쩌다 보니 지난 포스팅 이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동안 나는 두 번째 임신과 출산을 했고, 그렇게 태어난 둘째가 벌써 6개월이 되었으니 결코 짧다고 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아무튼 그간 포스팅을 못한 것에 대해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이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일단 먹고사는 일이 아니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과도한 필터링을 하는 탓에 글 한 편을 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진득하니 앉아서 쓸 처지가 못되니 에버노트에는 생각의 파편들만 남게 되었다.


최근에 「기록의 쓸모」 라는 책을 읽었는데 세간에 꽤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굉장히 잘 쓴 책이라든가 엄청난 insight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순전히 개취입니다), 나로 하여금 '호흡이 긴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아예 날을 잡아 글을 써보리라 다짐하면서 오늘은 에버노트에 남아 있는 지난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봤다.




(여전히 하고 있는 자아성찰을 하던 어느 날)


자신이 원하는 걸 안다는 것도 엄청난 능력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왜 몰라?' '남도 아니고 내가 그걸 모를 수가 있나?'

언뜻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피상적인 것들이 아닌 내면의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 보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남들이 통상적으로 추구하는 것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기준 혹은 잣대인 경우도 많고 어찌어찌 성실하게 주어진 트랙을 밟아오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굉장히 우울하던 올해 초 어느 날)


오는 6월이면 결혼한 지 만 4년이 된다.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 시간이 있었을까? 결혼을 하고 크게는 세 번의 이사를 했고, 나의 퇴사에 이어 남편의 퇴사, 남편의 이직 등 우리 부부의 커리어에도 수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내 나이는 서른하나에서 서른다섯으로 빼박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섰고, 무엇보다도 그 사이 나는 두 번의 임신과 출산 끝에 속칭 '애둘맘'이 되었다. 40년처럼 까지는 오버겠지만 14년 정도는 가뿐히 지난 느낌이다.


나는 행복한가?


생각해보면 지금 내 라이프는 이십 대 중후반의 내가 꿈꾸던 모습과 얼추 비슷하다. 여전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삶을 둘러싼 불확실한 요소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지, 결혼을 하긴 해야 하는지, 결혼을 한다면 애는 언제쯤 몇 명이나 낳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과 임신, 출산은 더 이상 내 커리어플랜을 짜는 데 걸림돌이 되는 미지수가 아니다. (미지수가 아닐 뿐, 무엇을 꿈꾸든 내가 고려하는 첫 번째 factor가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서른다섯 전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딸 골고루 하나씩 낳은 엄마가 된 건 분명 내가 꿈꾸던 모습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의 나는 ‘행복해’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한다. (아직 서문에서 진도를 많이 빼진 못했지만) 서울대학교 최인철 교수님이 신작 ‘굿라이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행복의 모호한 정의 때문에 너무 거창하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지, 어째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또 불행한가 하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아니, 감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기엔 어쩐지 호강에 겨워 깨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남들이 볼 때 내 상황이 얼마나 좋든지 간에 모든 사람은 남의 중병보다 제 고뿔이 힘든 법이지 않겠는가? 때마침 남편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적극적으로 육아를 함께 하고 있고, 시터와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는 경제력이 되고, 지척에 사는 친정부모님이 물심양면 도와주시지만, 그래도 난 때때로 삶의 무게가 버겁고 하늘로 솟든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만큼 숨이 막힌다. 어쩌면 남들 눈에 완벽할 만큼 좋은 환경 때문에 쉽게 불평하기도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 힘이 들 때도 있다.




(이건 마무리를 짓고 싶은 미완의 글)


지난 1월, 우리 집 둘째가 태어났다. 그렇다. 나는 애둘맘이 되었고, 우리는 (오랜 관념 탓에 왠지 자연스럽고, 완성체처럼 느껴지는) 4인 가족이 된 것이다.


많은 육아 선배들이 애가 둘이 되면 두 배가 아닌 네 배 이상 힘이 들 거라 협박했기 때문에 난 아주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인지 크게 힘든 줄은 모르겠더라... 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래도 힘들다. 매우 힘들다.  


둘째를 키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첫째를 키운 짬밥이 있으니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들이 가뿐하다.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거나 걱정하면서 가슴 졸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생존본능 때문일까? 대부분의 가정에서 둘째는 첫째에 비해 순한 경향이 있다. 아무리 목놓아 울어도 알만큼 아는 부모가 매번 뛰어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걸까? 아니면, 가뜩이나 힘든 부모한테 보채 봐야 남는 것도 없으니 '순함'으로 승부하겠다는 심산일까? 아이가 타고난 건지, 부모가 능숙해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건지, 어쨌든 둘째 하나 그 자체가 힘든 건 확실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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