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영 Jul 23. 2020

나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4년만에 경단녀를 탈출한 소회

지난 4월, 난 (자발적) 경단녀의 삶에 (역시 이번에도 자발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주 3일 출근이니 마침표까진 아니고 쉼표 정도 되려나? 아무튼 오늘은 그 소회를 남겨보려 한다. (어쩐지 두 번의 반복된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되게 재수 없어 보이네?)

다시 일을 시작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주변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일하니 어때? 할만해?” 류의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이 “재미있어!”였다. 사실 처음엔 저런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낯간지러운 마음에 “아마 처음이라 그렇겠지, 뭐”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나는 요새 일이 좋다. 


주 3일 출근이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월급은 거의 반토막이 났고, 전부 이모님한테 상납하는 꼴이지만. 누구나 다 아는 그런 회사가 아니기에 늘 구구절절 회사와 업에 대해 설명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한 가지 이유를 콕 짚지는 못하겠다. 


그냥 일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 어떤 일도 육아보다 힘들진 않다는 걸 알아서?
아니면 임신+출산+육아 쓰리콤보를 무려 두 차례나 겪고 나니 나란 인간이 좀 더 성숙해진 건가?
바뀐 업이 나와 더 잘 맞는 건가?
회사 사이즈가 문제일까?


과거 대비 달라진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 때문이라기 보단 아마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겠지.




어쨌든 그러다 보니 나는 무엇보다도 지난 회사생활이 너무너무 아쉽다. 

상사를 욕하고 직장생활을 권태로워했던.
수동적, 소극적, 방어적으로 일하던.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그렇지만 이제 와서 지난날을 아쉬워하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는 거지.


난 그래서 요즘 적극적, 능동적, 공격적으로 일한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만 태생적으로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이지만, 메일, 문자, 전화로 영업을 시전 하고, 학연/지연/혈연을 몽땅 끌어다 쓸 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일하는 중이다. (아, 그래도 어쩐지 회사 사람들은 이 글을 안 봤으면 좋겠네ㅋㅋ)


그리고 남편한테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 오는 거야?”라는 웃음 섞인 핀잔을 들을 만큼 끊임없이 고민한다. 실제로 일거리를 들고 오진 않지만, 일과 직장 내 관계 같은 것들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아무튼 난 요새 일하는 게 참 좋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참 가볍다. 아이 엄마나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좋고, 성인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눈에 보이는 아웃풋을 만드는 과정도 즐겁다. 그 때 느끼는 성취감도 짜릿하다. 그리고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 덕분에 함께 있을 때 더 찐하게 안고 놀아줄 에너지가 생기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다. 내 머릿속이 집안일과 남편, 아이들로 가득 차지 않고, 내 입에서 아이 이야기가 아닌 일에 대한 고민,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매니징 하는 법에 대한 고민이 나오는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최근에 내가 꽂힌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