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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Sep 25. 2020

37개월 아들의 육아일기

지금처럼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키 38 퍼센타일, 몸무게 51 퍼센타일.


오랜만에 받은 첫째의 영유아 검진 결과. 코로나로 수개월 째 미루다 어린이집 제출 때문에 할 수 없이 한 검진이었는데 결과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이즈가 커서 "이대로 가면 무조건 4키로가 넘을 테니 운동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분만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하루에 거의 3만보씩 걸은 끝에 간신히 3.7키로 우량아로 낳았는데 애가 작다고? 


남편이나 나나 작은 키가 아니기 때문에(남편은 반올림해서 178cm, 나는 167cm다) 걱정은 안 하지만, 더군다나 남편이 초등학교 때까지 앞에서 3~4번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늦게 큰 편이라니... 

 

그렇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놀란 가슴을 37개월, 9개월 두 아이의 육아일기를 쓰며 달래 보기로 한다. 


솔직히 영유아 검진 결과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진 않는다. 

여기에도 나름 이유가 있는데 지금은 말을 잘하기도 하고 너무 많아서 귀가 아플 지경인 첫째가 18개월 검진 때 '언어 추적 검사 요망' 소견을 들었으며, 당시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아빠가 퇴근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도 중요하지만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빠 퇴근하고 나서 재워라"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과감하게 그 말을 무시하고 내 페이스대로 계속 일찍 재웠고, 지금까지 1도 후회하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은 37개월 이주원의 육아일기. 


말을 아주 예쁘게 한다.

밤에 자다가 자꾸 나를 찾으면서 울거나 안방으로 와서 

"왜 자꾸 엄마방으로 오는 거야?"  

"엄마가 예뻐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혼자 자니까 무서워"  


기억력이 아주 좋고, 집요한 면이 있다. 

약속을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 뭘 사준다고 약속하거나 "자고 일어나서 뭐 먹자"라고 이야기하면 눈 뜨자마자 찾기 시작해서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괴롭히는 스타일? ㅋㅋ  "어제 oo이네 집에 갔었지?"라며 한참 전에 만난 친구 이야기도 문득문득 꺼내는 (기억력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내 기준에서는 특이한) 아이다.  


가끔 미운 네 살답게 생떼를 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성품을 가진 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민아~ 다민다민 다민아~~" 하면서 동생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물론 이러다가도 갑자기 뒤통수를 퍽 때리는 게 일상다반사다), "이모 예뻐~ 사랑스러워~" 애정표현도 잘하는 이 시대의 '따도남'. 주원이가 태어나고 나 역시 애정표현의 빈도와 표현력이 상승하고 있다고 느낀다.     


요샌 갖고 싶은 게 아주 많고, 뭘 사주는 사람한테는 고마움과 애정을 무한히 표현한다.  

“할머니는 라니도 사주고 옷도 사줘서 예쁘다고 생각해”라며 할머니를 녹이는 통에 주원이를 향한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의 선물공세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갖고 싶은 게 많은지 "나 이것도 사줘~ 저것도 사주세요~" 이주원에겐 매일매일이 생일이자 크리스마스다.  


여전히 9시 전에 잠드는 모범 아기지만, 덕분에 6시 반 전에는 무조건 일어나는 우리 집 알람이고, 


밥 먹을 때 자리에 앉아있는 걸 싫어해서 내가 극혐 했던 ‘따라다니면서 먹이는 엄마’가 되었지만, 먹을 것을 매우 좋아하고 관심도 많은 아이. 최근에는 종종 "나도 어른 되면 술 마실 거야! 주스 안 마셔!"라는 말을 해서 누가 들으면 엄마 아빠가 술꾼인 줄 알까 무섭지만 뭔지도 모르는 '술'마저도 먹는 거라 그저 궁금한 아이.  


아주 아기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요새는 세계명작, 특히 ‘오즈의 마법사’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꽂혀 있다. 어른이 봐도 길다 싶은 글밥이 많은 책도 끝까지 집중해서 잘 듣는 게 기특하고 대견해서 책을 사주다가도 같은 책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는다든지, 자기 전에 십 수권을 읽는 건 때로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이다. 




아직 너도 어린아이인데 동생에 비해 크고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엄마 아빠한테 종종 혼나는 게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순간이, 37개월의 네가 얼마나 그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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