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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Oct 03. 2020

꽃보다 아름다운 서른다섯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 내 나이가 어때서~

아이를 낳고 내 세계의 중심은 아이로 바뀌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히 희생적인 엄마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전통적인 어머니 상은 내가 지향하는 바도 아닐뿐더러 모든 걸 포기하고 살기에 나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이 시대의 평범한 30대 여자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범한 30대 여자 사람이란? 나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 외에는 남녀차별을 받아본 적도 없고 남자애들 다 제치고 1등 먹다가 명문대 졸업하고 좋은 직장까지 갔다. 학교에서 집에서 교육받은 대로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라고 굳게 믿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부 깨졌고, 결혼을 하면서 “엥?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금이 2016년 맞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후진적인 파트가 여전히 가부장문화가 득세한 가정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다가  ‘내 딸이 사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싸우고 저항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평화로운 가정을 연출하기 위해 참고 사는 사람?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아무튼 다소 페미니스트 성향까지 가진 나임에도 희한하게 아이를 낳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랄까,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걸 종종 느낀다. 가벼운 예로 미세먼지가 한창 나쁘던 지난해에도, 코로나로 집콕생활과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올해에도 내 걱정은 ‘대체 내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어떤 모습인 걸까? 여러모로 엉망진창 재난영화 저리 가라인 세상에 어쩌자고 애를 둘이나 낳아 놓은 거냐? 우리 애들이 동남아 풀빌라에 가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날이 오긴 할까?’ 이런 류다. 100세 시대에 나 역시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 주제에 '내가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는 out of 안중, 그런 느낌?


사실 '어, 나 왜 이러지? 내가 왜 세상과 미래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자각을 한 계기는 따로 있다.


주원이를 낳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2018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빠가 한 번 읽어볼 만하다며 책 한 권을 건네줬다. 바로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 종신교수로 임명되어 주목을 받았던 석지영 교수의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탄을 자아냈던 건 하버드대 종신교수라는 그녀의 성취보다도 어린 시절에는 (진지하게) 무용을 하고,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문학, 불문학 등을 공부했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이 그녀 인생의 자산이자 토대가 되어 결국 남다른 성취까지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내 머리가 띵했던 포인트는, 아빠는 '내 딸이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공부를 해서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건네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아이들이 음악, 미술 같은 예술부터 어문학, 인문학,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까지 두루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 어쩐지 아빠한테 미안했고, 그 이후에는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삶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건 나의 어떤 기질 때문일 수도, 자라온 환경 탓일 수도, 대한민국 사회의 영향일 수도 있고, 이게 꼭 잘못되거나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서른다섯, 창창한 나이이지 않은가? 여전히 못 해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며, 뭐든 시도하기에 충분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굳이 지금부터 세상의 주인공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고, 인생의 주인공을 아이들에게 넘기지 않으련다. 뭐, 사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죽을 때까지 나인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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