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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Feb 08. 2021

우리는 2인3각 달리기 중입니다

때론 내겐 너무 버거운 애.둘.육.아.

남편은 자타공인 열정 부자다.


사랑에 있어서도 쿨(cool) 하기보다는 굉장히 웜(warm)하게 애정공세를 하는 스타일이지만, 자기애도 몹시 강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도 굉장히 뜨겁다. 결혼 전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던 사람인데 막상 여행을 가서도 "여행도 좋지만 사실상 나에게는 일하는 것과 무차별하다"는 막말을 하여 나를 분개(?)케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인간적으로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모든 문제는 육아와 함께 시작된다.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것,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좋지! 그런데 소는 누가 키워?


알고 있다. 남편은 능력도 있고, 자기 분야에서 나름 실력을 인정받아 찾는 사람들도 많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네트워킹하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겠지. 나도 때로는 "여보, 집안일이랑 애들은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세상을 향해 맘껏 날아올라" 그저 응원하고 지지하는 아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가 기관을 다녀도, 월 이백만 원씩 들여 시터 이모를 써도, 아이를 키우는 데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있다. 새벽에 자다 깨서 소변을 보겠다는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도 가야 하고, 아침 여섯 시부터 깨는 우리 집 새벽형 베이비들은 부모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으며, 심지어 눈 뜨자마자 "배고파" 하며 아침 식사를 요구한다. 몸집은 작지만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들(ex. 기저귀, 분유, 젖병 세제, 세탁세제, 샴푸, 로션, 치약, 내복, 외출복, 양말, 신발, 모자, 장난감, 책 등)이 필요하며, 이를 떨어지지 않게 챙겨서 채워 넣는 것도, 예방접종, 영유아 검진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소아과에 데려가는 것도 부모의 일이다. 


시터 이모가 퇴근한 여섯 시 이후에도 할 일은 많다. 저녁 먹이기, 씻기기, 자기 전까지 책 읽고 레고 하고 놀다가 양치시키고 재우기. 재울 때는 가습기 물이 충분히 차 있는지 확인하고, 책 읽기, 옛날이야기, 노래 등 버라이어티한 아드님의 요구사항을 들어드려야 한다. 가까스로 아이가 잠들면, 둘째 베이비브레짜에 분유와 물은 충분한지, 내일 아침 먹을 빵이나 우유, 과일은 있는지 확인하고, 첫째 어린이집 가방을 챙긴다. 놀면서 어질러진 거실까지 정리하는 것까지, 늘 할 일은 넘쳐난다. 그나마 남편과 환상의 복식조처럼 움직일 때, 우리에겐 보상처럼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마실 한 시간이 주어진다. 틱톡틱톡




요인즉슨,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의 삶은 하루하루가 '체험 삶의 현장' 너낌이다. 게다가 아빠 한 사람만 열정 부자여도 힘들 판국에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우리 집은 엄마인 나 역시 현모양처, 신사임당, 내조의 여왕 역할로만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남편이 '나중에 이런 걸 하면 좋을 것 같아'라든지, '내가 생각하는 커리어 패스로 가다 보면 네트워킹이 더 필요할 수도 있어' 류의 이야기만 해도 파르르 발끈하는 사람, 그게 나다. 남편이 지금 당장 어딜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몇 년 뒤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도 확정적인 게 아니라 그저 가설을 말할 뿐인데 대뜸 내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그럼 소는 누가 키워?" 피해망상증 환자가 따로 없지 않은가? 


위는 실제로 며칠 전 우리 집에서 오간 대화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꺼내서 잔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진 남편도 원망스러웠지만, 그보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구려서 눈물이 났다. pathetic. 내가 생각하는 육아의 가장 거지 같은 부분이다. 아, 사는 거 진짜 되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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