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모유수유의 진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아이가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시점부터 갑자기 시작되는(것처럼 느껴지는) 육아는 여러모로 엄마를 당혹스럽게 한다. 뱃속 태아를 키우는 동안에도 간간이 태담을 하고 힘찬 태동을 통해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엄마로서의 자아를 형성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완전한 사람의 꼴을 갖춘 아이가 눈 앞에 있는 건 생경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 순간부터 엄마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시작으로 엄마 역할을 바로 시작할 것을 요구당한다.
초반에 가장 어려운 건 아무래도 모유수유일 것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엄마들이 산후조리를 위해 조리원에 들어가거나 산후 도우미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도 육아 중 대부분의 영역(재우기, 우는 아이 달래기, 기저귀 갈기, 목욕 등)은 위임이 가능한 반면, 모유수유는 그게 불가능한 유일한 영역이다. (물론, 모유수유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이며, 분유를 먹일 경우 수유도 위임이 가능해진다)
아무튼 출산 후 모유수유가 너무 어렵다는 친구의 말에 "처음에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나아지고, 나중에는 너무 편하고 중독될 지경에 이를 거야"라고 대답하고 난 후 나의 모유수유 역사를 돌이켜봤다.
# 출산 후 한 달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아이가 없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내 일상을 완전히 점령했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한 달여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에 당연할 수도 있지만, 특히나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나의 세상은 정말 완벽하게 아이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 누가 나에게 "아기 낳으면 모유수유 할거야?"라고 물으면, 별 고민 없이 "젖만 잘 나온다면 6개월은 해보려고요"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젖이 안 나와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모유수유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인내를 요하는 일인지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감히 '6개월(씩이나) 모유수유'를 선언했다.
어쨌든 나는 험난한 모유수유 여정에 들어섰고, 이제 목표기간의 육분의 일(1/6)이 지났다.
신생아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아이지만, 수유 텀에 맞춰진 가슴 상태로 인해 자유로운 외출은 불가능하다. 가끔 볼일을 보기 위해 외출을 하더라도 <먹이자마자 나갔다가 3시간 안에 돌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우리가 윈윈 하는 길이므로.
밤중 수유 역시 참으로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유를 먹인다면 남편과 번갈아 깨서 먹이든 할 텐데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굳이 트림시키기 위해 남편을 따로 깨우는 게 아니라면) 말 그대로 '독박'수유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이 '수유 텀'이라는 개념이 아주 골 때린다.(아이가 먹기 시작한 시간부터 다음 먹는 시간까지)
아가의 수유 텀이 두 시간이라고 가정하면, 30분 동안 고군분투하면서 먹이고, 10분 이상 트림시켜서 눕히며 진을 빼고, 한 시간 정도 자고 나면 다음 수유 텀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밤에 잠을 자는 건지 마는 건지, 수유를 하다 꾸벅꾸벅 헤드뱅잉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 외에도 구부정한 자세로 모유수유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어깨와 목 통증까지... 모유수유가 어째서 어렵고 힘든지 그 이유가 줄줄이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뭔지... 오늘도 나는 "모유가 스테이크라면 분유는 라면"이라는 소아과 선생님의 신랄한 비유를 곱씹으며 모유수유를 한다.
# 적응기
이후, 나는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두세 차례 정도 젖몸살을 앓았다.
온몸이 불덩이 같은데 오한으로 몸은 덜덜 떨린다. 단단하게 뭉친 채 뜨거운 가슴은 너무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일단은 젖을 물리는 게 최선이다. 다음날 새벽같이 가슴 마사지 전문업체(ex. 오케타니, 아이통곡 등)에 전화해 급한 예약을 잡고 마사지를 받는데 '진통 저리 가라'의 고통,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마사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며칠 연속으로 받고 나서야 제 기능을 회복한다.
젖몸살이 오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엄마가 먹지 말아야 할 걸 먹었다거나(그렇지만 가슴 혹은 모유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엄격해서 이 사람들에 따르면 엄마들은 먹을 수 있는 게 아주 제한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기준들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았다. 술만 아니라면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즐겁게 모유수유를 하는 편이 엄마와 아이, 모두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젖양에 비해 아이가 덜 먹었다거나(아이의 컨디션 등 역시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수유를 한 번 건너뛰면서 유축도 안 했다거나 등등
나의 경우 특별히 '왜 젖몸살이 왔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더 고민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 이야기에 따르면 대체로 범인은 엄마인데, 따져봐야 괴롭고 자책만 하게 될 터였다. 난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더 이상 포기하고 절제하면서 수유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불행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수유는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가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한 채 그 기간을 꾸역꾸역 참고 넘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과 엄마도 백일까지만 하라고 만류하던 판국이었기에 돌이켜보면 꽤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모성 때문이라기 보단 내 특유의 오기 덕분인 것 같지만.
# 황금기
폭풍 같은 적응기간이 지나고 모유수유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인체의 신비 덕분인지 엄마와 아이는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늘어나는 젖양 덕분에 모유만 먹여서는 만들기 쉽지 않다는 미셸린 타이어 팔다리가 생겼다. (여전히 통통한 아이지만 한창때에 비하면 확연히 날씬해진 아이의 팔다리가 얼마나 아쉬운지) 아이가 목을 가눔에 따라 자세 잡기도 한층 수월해졌고, 아이 역시 빠는 요령을 터득하고 힘이 세져 수유시간이 짧아진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의 눈 맞춤!
모유수유를 할 때만큼 엄마와 아이 두 사람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드물다. 아직까지는 온 세상이 엄마고,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엄마가 가장 예쁠(아마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측) 아이는 그 어떤 연애 상대보다도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엄마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때 느껴지는 황홀감이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다. 그리고 아마 이 때문에 모유수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보다도 엄마가 모유수유에 중독되는 희한한 현상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 마무리
나는 7개월 하고 3주가 되던 날, 마지막 수유를 마쳤다.
약 8개월간 모유수유를 한 셈인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애초 계획했던 6개월까지는 완모(완전한 모유수유)를, 이후부터 단유 시점까지는 차차 분유를 섞여 먹이는 방식을 택했다. 단유를 하는 시점만큼이나 방법도 다양하겠지만, 나는 아이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가장 타격이 덜한 방식을 택하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 2주는 하루 1번 분유, 다음 2주는 하루 2번, 이후에는 하루 3번... 이런 식으로 차차 모유수유 횟수를 줄이고 분유 양을 늘려갔고, 마지막 수유를 마친 후에는 세 번의 단유 마사지를 받았다.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무리 젖양이 차츰 줄어 다 마른 것 같아도 안에는 젖이 남기 마련이고, 모유 찌꺼기까지 깨끗하게 빼는 편이 가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일단 그럴싸한 말인 데다 마사지를 받은 후 가슴이 시원해지고 가벼운 느낌이었으므로 그런 걸로 하자.
아무튼 차차 줄였던 게 효과적이었는지, 아이의 천성이 워낙 순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단유는 한 번에 아주 수월하게 성공했다. 더 이상 디카페인이 아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언제든 원할 땐 맥주 한 잔 들이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나면서도 '모유수유에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말로 가책 없이 간식을 먹어대며 다이어트를 미룰 수 없어 아쉬웠다. 하나 둘 올라오는 아이의 이에 깨물려 아파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스스로 기기 시작하면서 벌써 안겨있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둘만의 뜨거운 눈 맞춤을 할 핑계가 하나 사라졌다는 게 슬펐다.
단유를 한 시점으로부터도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나에게 모유수유란,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야 곱씹어 볼 추억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떠올리면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 가장 먼저 생각나 미소 짓게 되는 행복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