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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an 10. 2019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

'좋은 엄마 되기'의 함정에 빠지지 말 것

아이를 낳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모든 엄마가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엄청나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명확히 정의하지도 않은 채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프랑스 아이처럼', '똑게육아' 같은 유명한 육아서적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정신없고 너저분하고 엉망진창이었다.




초보 엄마는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직후, 어마 무시한 패닉에 빠지게 된다.


조리원에서 아기는 쾌적하게 세팅된 신생아실에서 (무려 3교대로 24시간 상주하는) 프로페셔널한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엄마와 만나는 시간은 수유시간과 하루 1시간 남짓의 모자동실 시간뿐이다. 엄마는 완벽하게 준비된 세 끼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을 먹으면서 수유만 하면 되고(물론 처음에는 이 수유'만'도 쉽진 않지만), 엄마 눈에 아기는 별문제 없이 수월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집에 오면 아기는 돌변한다. 성인들만 살던 집의 온습도는 아기에게 너무 덥거나 건조하기 일쑤다. 엄마는 늘 우왕좌왕하고, 할머니 역시 수십 년 전 기억을 되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다행히 신생아 다루는데 능숙한 산후도우미를 만나더라도 일단은 아기에게 낯선 손길이다. 뽀얗던 아기 얼굴에는 태열이 올라오고, 아기는 때로 먹기를 거부하고 그러다 먹은 걸 토하기도 한다. 조리원에선 늘 되는대로 수유하고 분유 보충은 선생님들 손에 맡겼던지라, 아이가 양이 찬 건지 부족한 건지 감도 없다. 원래도 잘 안 잤는데 나만 몰랐던 건지, 집에 온 아가는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덩달아 나도 자다 깨다 하느라 체력은 바닥이다. 이 와중에 주변의 다른 아가들은 가뿐하게 수면교육에 성공해서 통잠을 자는 것만 같다. 안아서 재우지 말고 아기 때부터 수면 습관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데 우리 아기는 내려놓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운다. 그 꼴을 보고 참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의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 안아주기도 버겁고 손목은 너덜거린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거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이 작디작은 아기에게도 화가 나더라.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나도 한때 자지 않고 울고 자다 깨서 울고 젖을 먹고도 안 자는 아기에게 "너 왜 그래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니" 같은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며 엉덩이를 때려보기도 했더랬다. 이렇게 화를 낸 다음에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작은 아이에게 화를 낸 미성숙하고 인내심 부족한 나 자신이 싫고 엄마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더 화가 난다는 거다.




아무튼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점부터 밤 수유가 끝나고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5개월 무렵까지는 내 길지 않은 육아 인생 중 암흑기였다. 그리고 그나마 이 시기를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한 건, '수면 의식을 치르고 방문을 슬며시 닫고 나와라', '아이에게 먹놀잠 패턴을 만들어줘라' 같은 육아달인들의 지침이 아닌, 엄마의 말과("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의 책에 나온 구절이었다.


'남들은 다 제대로 잘하고 있는데......' '다들 그래' '무조건 이래야만 해' 같은 생각에 휘둘리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전에 엄마가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단 불완전한 게 백배 낫다. 단, 그렇게 불완전한 엄마임에도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아이를 챙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 임경선,「엄마와 연애할 때」-


육아는 참 힘들고 어렵다. 아이의 까칠한 성격, 도움 안 되는 남편, 경제적인 부담, 밑도 끝도 없는 노동 때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엄마 마음속의 무한 책임감과 욕심이 자신을 한없이 몰아붙인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아기 때 애착형성을 잘해서 원만한 성격을 갖게 되는 것도, 집중력과 호기심을 가진 아이로 자라서 나중에 좋은 성적을 받는 것도, 모두 전적으로 엄마 하기에 달린 것만 같다.


나 역시 여전히 이런 무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는 당연히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건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아이가 오롯이 내가 키우는 대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부모의 오만일 수 있다. 나(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 역할이 끔찍하게 무겁고 부담되고 심지어 두렵고 무서워지지 않겠는가? 아이에게도 본인이 가지고 태어나는 천성, 기질이라는 게 있고, 자체적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자극을 받아들여서 소화하는 능력도 있고, 성장하면서 만나는 다른 어른이나 또래 친구들의 영향도 받을 것이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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