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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an 14. 2019

아기와 함께 여행하기

'여행'이라고 쓰고 '고행'이라 읽는다

예전보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실제로 세상이 험해지고 사교육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단지 요새 부모들이 육아를 더 힘들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선 후자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보자면, 요새 젊은 부모들은 자라면서 비교적 많은 걸 누려왔고 그래서인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싶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매년 1번 이상 해외여행을 간다. 내 주위만 봐도 북미와 유럽은 기본이고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까지 모두 섭렵한 친구들이 적지 않다. (이 친구들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아이를 낳으면서 갑자기 발이 묶여버리는 상황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실제로 많이 받았지만 맘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가 여행에 대한 것들이다. "아기가 몇 개월쯤 되면 데리고 여행을 갈 수 있나요?" "어디로 여행 가는 게 제일 좋을까요?"


세상에 정답이 어디 있고, 특히나 모든 아기마다 부모마다 상황과 성향이 다른데 어찌 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소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 우리의 여행기


5개월 아기 / 오키나와(일본) 3박 4일 / 친정식구들(부모님, 여동생 부부)


겁도 없이 예약한 아기와의 첫 번째 여행은 5개월 무렵이었다.

첫 여행인지라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챙겨야 할 것들을 list-up 했고, 무지막지한 짐을 싸다 식겁했다. 큰 캐리어와 작은 캐리어를 각각 1개씩 챙겼는데 절반은 아기 짐이었다. 기저귀만 해도 넉넉잡아 하루 10개라고 치고 40장 이상 넣었으니 말 다했지 않는가? 어른들은 이틀 연속 같은 옷을 입더라도 아기는 더럽혀질 수 가능성을 대비해 여벌 옷까지 챙겼고, 목욕용품, 로션, 가재수건 등 짐을 싼 후에도 빠뜨린 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좋았던 건 아직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 완모(완전 모유수유) 아기라, 나만 있으면 언제든 먹일 수 있고, 나 외에는 간식조차 필요하지 않은 월령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식당에만 한 번 갈래도 과자에 과일에 종류별로 간식을 챙겨 나가곤 한다) 만약을 대비해 분유와 젖병 두어 개를 챙기긴 했지만, 여행 내내 호텔방에서 차 안에서 별 무리 없이 수유를 할 수 있었다. 또 성인 여섯에 아기 하나이다 보니 일손이 많았던 점도 장점이었다. 남편은 운전을, 제부는 조수 역할 및 사진사를 각각 맡아준 덕에 부모님과 나, 여동생이 아기를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 성인 남자가 셋이라 이동할 때마다 짐을 옮기고 차에 실었다 내리는 일 역시 순식간에 뚝딱이었다. 아기띠도 번갈아 하고, 트림도 번갈아 시켜주고, 내가 할 일은 때 맞춰 수유하는 일뿐이었으니 이보다 편할 수 있으랴!


9개월 아기 / 강원도 홍천 1박 2일 / 부부 단독


다음 달 제주도 여름휴가를 앞두고 예행연습 겸 우리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용감하게 홍천으로 떠났다.

그 사이 대구 시댁도 한 번 다녀온 데다 (고작) 1박이라 짐 싸는 일은 비교적 수월했다. 게다가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짐이 많아도 한 번만 싣고 필요할 때 내리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편했다. 아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아기는 카시트에 잘 앉아있는 편이다.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면서 멍 때릴 때도 있고(창밖이 잘 보이지도 않는구먼) 튤립 사운드북만 쥐어주면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가 잠들기도 한다. 가끔 잠이 안 오는데 길이 막혀 차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칭얼거리기도 하는데 이것도 안 하면 애가 아니라 어른이겠지? 그럴 때는 과자나 과일을 물려주면 잠잠해진다. 아이의 완벽한 협조에도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풀빌라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에 따라 우리는 개별 풀이 딸린 고급 펜션(?)을 예약했는데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보니 바닥이 대리석인 데다 사방이 계단이었다. 지금처럼 뛰어다녀도 문제겠지만 당시 아기는 열심히 사방팔방 기어 다니기 바쁜 월령이었는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부부만, 아니 성인들만 있을 때는 숙소를 고를 때 그저 깨끗한지, 넓고 쾌적한지, 침대가 편안한지 등만 생각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어찌어찌 여기저기 쿠션으로 막고 아기는 구석에 있는 마루 위에서 놀게 하면서 버텼지만, 맥도 빠지고 진도 빠지는 일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녁은 숙소에서 준비해주는 바비큐를 예약했는데 성인 둘이 아이를 데리고 바비큐를 하는 건 처음이라 뭣도 몰라서 시도했던 거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자꾸 이것저것 만지고 움직이고 싶어 하는 아기를 케어하면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10개월 아기 / 제주도 3박 4일 / 1박 부부 단독 + 친정부모님 합류


그리하여 우리는 제주도 여행에 엄마 아빠를 끌어들였다. 두 분은 원래 우리가 제주도를 간 사이 오붓하고 우아하게 일본을 갈 계획이셨지만, 딸과 사위의 간청에 못 이겨 합류하셨다. (아빠의 스케줄 상 하루 늦게) 일단 이번 여행에서 관건은 이유식이었다. 홍천에도 이유식을 가져갔지만 1박과 3박은 다른 이야기였다. 먼저 출발하는 내가 하루치를, 다음 날 오는 엄마가 나머지 이유식을 얼려서 보냉백에 담아서 가져갔다.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당장 먹일 이유식을 제외하고는 보관을 부탁했고, 조식을 먹을 때는 해동해서 갖다 달라고 하고, 외출할 때는 한두 개씩 가지고 나갔다. 우리는 신혼 때 갔던 (좋은 추억이 서려있는) 애월 쪽 호텔에 묵었는데 왜 아기 엄마들이 시설이 노후화된 신라를 선택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엔 아기 침대도 없었고 욕조 수량도 넉넉지 않았으며 아기를 재우려면 쿠션과 이불이 더 필요하다니까 추가 요금을 물도록 했다. 젖병을 사용할 때마다 제때 소독해서 가져다주지 않는 바람에 나를 분노하게 했고, 이유식 해동은 느렸으며 그마저도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웠다. 게다가 아기는 이맘때 아기들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이유식 거부 증상’을 보이는 중이라 먹일 때마다 동요를 50곡은 부르면서 온갖 재롱잔치를 해야 했다. 첫날 도착해서 놀 때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우리끼리도 충분할 뻔했는데?"라던 남편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머님 언제 오신다고?" 점심 이후에나 도착할 엄마 아빠를 찾았다.  


14개월 아기 / 경주 2박 3일 / 시댁 식구들(시부모님, 시동생)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은 시댁 식구들과 함께 한 경주 여행이었다.

KTX를 타고 경주에서 만나 부모님이 가지고 오신 차로 돌아다니는 일정이었다. KTX는 7~8개월 무렵 대구에 내려갈 때 탄 적이 있는데 추억이라기보다는 악몽에 가까웠다. 차에서도, 비행기에서도 곧잘 자던 아기가 KTX의 진동은 뭔가 달랐는지, 답답한 공기 때문인지 소음 때문인지 전혀 잠을 자지 못하고 칭얼댔고 남편은 특실 좌석을 두고 계속 복도를 서성여야 했다. 여행을 앞두고 두려웠지만, 이번에는 아기의 낮잠시간에 맞춰 표를 끊었고(그전에는 아기가 똑같이 오전 한 번, 오후 한 번 잤지만 날마다 시간대는 달랐다. 아기가 9개월 무렵 바뀐 시터 덕분에 규칙적인 낮잠을 자게 된 후였다.) 다행히 아기는 2시간 중 1시간 정도는 잘 자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유식과 분유가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꽤 보수적으로 집에서 만든 음식만 고집하고 있었지만, 여행에서는 조금 타협을 하기로 했다. 당장 먹을 주먹밥과 몇 가지 간식(과자, 바나나 등)을 챙기고, 아기용 짜장과 카레, 밥에 뿌려먹는 가루, 김 등을 준비했다. 호텔에서는 간이 거의 안 된 흰 죽과 순두부 등을 먹이기도 하고, 모닝빵을 조금 뜯어 먹이기도 했다.     




# 소소한 팁

    

1. 가장 편한 시기는 이유식 시작하기 전이나 유아식 시작 후

2. 비행기보다 KTX가 더 힘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것, 낮잠시간이 규칙적인 아기라면 맞춰서 티켓팅을 할 것

3. 아기가 어느 정도 크기 전까지는 가능하면 다른 식구들과 함께 가서 도움받을 것

            



덧붙이자면, 나와 남편은 집순이 집돌이 성향이 다분한 자들이다. 그래서 아이가 없을 땐 산더미 같은 짐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들쳐 메고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는 부모들을 보며 '편하게 집에 있지 왜 나와서 고생일까?' 생각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그게 참 그렇더라. 어린아이를 둔 부모는 밖에 나오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지만 집에 있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휴가로 몸이 더 고되고 여행이 아닌 고행으로 느껴질지언정, 그나마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낯선 풍경을 접하고 색다른 음식을 쑤셔 넣는 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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