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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pr 04. 2021

2년 차의 업무 적응기

[엄마의 일] 혼돈의 2년 차를 지나며 나는 성장했던 것 같다

사수가 떠나고


1  , 나의 친절했던 사수는 정말 말도  되게 토꼈다. 물론 회사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조직 개편이 있고, (시직)원들이 집에 가기도 하며, 간부나 사원들의 부서 이동도 드문 일은 아니다. 선배도 아마 부서를 옮기고 싶어서  오랜 시간 물밑 작업을 했을 것이고, 본인의 부서 이동은 미리 알았겠지. 딱히 나를  먹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지만 하필 12월 초 단합을 위해 떠난 부서 1박 2일 워크숍에서 부서 차장님과 팔씨름을 하던 선배는 팔꿈치 뼈가 아작 나는 중상을 입었고, 아주 긴 휴가를 쓰더니 다음 해 1월 옆 부서로 복귀해 버린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이전까지 우리 파트는 나이가 지긋한 차장님과 선배, 나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차장님은 경험과 연륜이 풍부하고 그래서 감은 좋지만, 엑셀의 ㅇ도 모르는 분이셨고, 차장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볼까? 한 번 돌려봐~" 하면 시뮬레이션을 비롯한 모든 오퍼레이션 업무는 사실상 선배 혼자 해왔던 것.


나에게는 용량이 커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방대한 엑셀만이 남아 있었고, 사람 좋게 웃으면서 디렉션만 주는 우리 차장님과 깐깐하기로 소문난 지원 부서 과장님의 눈은 난데없이 나를 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6시 땡 하면 상무님 비서 분(계약직)과 함께 퇴근하던 나의 퇴근 시간은 늦어졌고, 엑셀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와중에 정책 내용을 수정할 때마다 시뮬레이션을 새로 돌려야 하는 상황도 멘붕이었고, 정책을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커서 이 정책의 결재 여부가 고작 신입사원 딱지를 뗄랑말랑 하는 나한테 달려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며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지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신입 사원 시절과 180도 다른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깐깐한 지원 부서 과장님이 이후 나에게 두 차례의 소개팅을 주선(그중 한 명은 무려 아내 분의 사촌 동생, 즉 가족이었다)했던 걸 보면, 당시 내가 꽤 잘했던 것 같기도 하다.




딴짓도 참 많이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사회생활 초반 딴짓도 참 많이 했다.

9시 출근에 앞서 강남역에 있는 중국어 학원을 1년 넘게 다니기도 했고, 꽃꽂이를 하러 다니기도, 잠시지만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도 했었다. 동호회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한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에너지를 밖으로 뻗쳤어야 했을까, 그 에너지를 회사 업무에 쏟을 수는 없었을까, 어떤 이유로 나는 회사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여타 자기 계발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려고 했던 걸까, 궁금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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