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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pr 20. 2021

나이가 든다는 것

이십 대 or 오십 대? 아니,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이십 대 초반 내 꿈은 '빨리 오십 대가 되는 것'이었다.


정작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오십 대이던 엄마와 친구 분들의 삶이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자식들 대학까지 보낸 후 찾은 물리적/정신적 여유, 안정된 경제력과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데 없이 건강한 몸, 이 모든 게 균형을 이룬 평화로운 삶.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학교 공부도 재미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졸업 후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인생 과제들이 숨 막히게 느껴지던 내 눈에 오십 대는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처럼 보였다.


지금의 나는 나이 드는 게 무섭고 싫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거친 탓도 있겠지만, 둘째 출산 후 회복 속도는 첫째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럴 때 나는 나이를 탓한다. 몸무게는 마지막 1~2kg를 남겨두고 죽어라 안 빠진다. 원래도 건성이었던 피부는 한여름에도 오일을 섞어 발라야 할 만큼 건조해졌고, 면역력이 떨어지다 보니 약한 부위는 수시로 고장이 난다.

별생각 없이 살다가 머리를 말리던 중 흰머리 한 가닥을 발견한 날, 혹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낀 날이면 '아, 청춘이여'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오십 대를 꿈꾸던 내가 나이 드는 게 무섭고 싫다는 건 지금의 내 삶이 몹시 만족스럽다는 얘기일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결혼도 했지, 아들 딸 골고루 하나씩 낳아서 키우고 있지. 더 이상 사람들, 특히 나이 드신 어른들의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들을 일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 덕분에 전에 없이 재미있고 신나게 내 일도 하는 중이다. 아이가 둘인 엄마이기 때문에 받는 제한은 있지만, 내 인생에 불확실한 변수는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예를 들면, 모든 의사결정에 앞서 남편과 아이들을 고려하지만(남편 역시 마찬가지고), 더 이상 '나와 남편 직장이 너무 멀면 집은 어디에 구하지?', '진급 앞두고 임신하면 어쩌지?' 같은 류의 걱정은 필요 없어졌다.


솔직히 나이 드는 게 꼭 싫진 않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네 꼬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스스로를 '아줌마'라 칭했다. 진작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지만 인정하기 어려워 발악하던 나의 정체성을 드디어 받아들인 셈이다. 처음이 어렵지 말하다 보니 입에도 착착 붙고, 기분도 괜찮았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아줌마!"라고 부른다면 그건 여전히 충격일까?


그래, 나는 아줌마다. 그리고 이제 내 꿈은 멋진 중년으로 나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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