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에 수능을 치른 아줌마의 소회
오늘은 수능일이었다.
"수능 보는 날은 유난히 춥다"고들 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도 않네.
주변에 수능 보는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고, 내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보니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수능'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금세 추억 여행을 하면서 상념에 잠기는 거, 수능 본 세대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엄마들의 출산 이야기처럼 저마다 할 얘기 참 많은 주제다, 수능.
수능은 다소 불합리하고, 꽤나 잔인한 시험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게다가 나 자신은 수능을 아주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덕을 어느 정도는 보면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 동안 학습한 것들을 하루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한다니!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수용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둘 중 어떤 경우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옵소서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위한 기도」中
그렇지만 수능뿐 아니라,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 기도문처럼 내가 바꿀 수 없는 제도의 불합리함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시험은 이미 끝났지만) 수능을 보는 학생들이 돌아서서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를, 그리고 남은 입시도 끝까지 잘 마무리하기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능을 치른 지 17년이 지난 선배의 입장에서 돌아보니) 수능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며, 비슷한 점수를 받아 같은 대학을 가더라도 그때부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또 무지막지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아니야, 중요하지 않아'가 아니다.
수능은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의미도 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치르는 첫 번째 대형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프로젝트 하나 삐끗했다고 문 닫을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기사회생. 전화위복. 힘들지만 가능하고 인생사 새옹지마일 수도 있고?
아무쪼록 수능을 치른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