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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Nov 01. 2021

주원이의 할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빠에게

엊그제는 아빠의 생신이었다.


공교롭게도 엄마아빠의 생신은 같은 10월이고, 유난히 정신없는 날을 보내고 있는 나는    제때 편지를 쓰지 못했으며, 가뜩이나 방치되어  브런치는 의도치 않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장이 되고 있다.


사실 아빠에 대한 글은 지난해 아빠 생신에 이미 한 번 썼던 터라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더 고민이 됐다. 우리 아빠가 참 할 이야기가 많은 재밌고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칫 식상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러다 엊저녁 아이의 색연필을 깎아주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의 할아버지(그러니까 아빠의 아빠)는 연필을 참 잘 깎으셨더랬다. 아주 정갈하게, 연필깎이보다 예쁘게. 주로 덜덜덜덜 손잡이를 돌려쓰는 연필깎이를 쓰던 세대지만, 할아버지 댁에 가면 가끔 손주들의 연필을 깎아주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그 세대 할아버지였다. 손주들을 야단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사랑을 표현하지도 않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애틋한 추억이 없달까.


아무튼 아이들이 잠들고 혼자 식탁에 앉아 색연필을 깎다 뜬금없는 기억을 소환하게 됐는데 그러다 문득 ‘우리 아빠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할아버지로 기억될까?’ 싶어 졌고, 오늘은 이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아직 아이들이 5, 2살밖에 안됐고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 갈 테지만)


아빠는 아마


에너지와 힘이 넘치는 젊은 할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가면 “안아줘, 업어줘, 무등 태워줘하는 주원이에게는 특히  그렇겠지? 젊은 나나 남편도 때론 힘에 부쳐 어르고 달래서 설득하는 육체노동(?) 60 중반의 나이에도 기꺼이 하는 할아버지! 유모차 끌고 화담숲  바퀴도 거뜬히 도는 할아버지!  둘을 키우며 생전 해본  없는 ‘싸움놀이 다섯  손자와 즐겁게 하는 할아버지! 그게 바로 우리 아빠다.


이보다  크게, 그리고 중요하게는 뭐든지 오케이 하는 허용적인 할아버지로 기억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아빠는 자식들한테도 딱히 ‘하지 마, 안돼  없었는데 사실 그건 이미 엄마가 알아서 자식들을  managing(사랑으로 키운  기본값!) 하기도 했고, 나와  동생은 대체로 하지 말라는  안 하는 범생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빠를 다시 한번 보게 됐고, 새삼 놀라고 반했다(으응?ㅋㅋ).  머릿속에 있는 이론,  위험하거나 남을 다치게 하는  말고는 허용해라를 저렇게  실천할  있다니! (저런 아빠를 두었음에도  대체  이렇게 틀에 박힌 컨트롤 프릭으로 성장한 것인가? 역시 타고나는  큰가?)




손주들이 생기면서 엄마아빠의 생신은 늘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이번 아빠 생신은 우리 집의 세 번째 아기 천사, 나의 첫 조카, 베이비 태리의 백일잔치와 합동으로 진행되면서 더욱 정신이 없었다. 나름 와인도 마시고, 생일 초도 불었지만, 제대로 아빠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전할 시간조차 없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아빠를 많이 닮은(심각한 길치에 물건도 잘 흘리고 기억력도 나쁘고 골치 아픈 행정 업무를 질색팔색 하는 그런 점들?ㅋㅋ) 큰 딸이 아빠의 딸이라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지와 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생신 축하해요, 나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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