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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Feb 06. 2022

넉넉하지 않기에 하루하루가 빛나는

치열한 나의 30대를 응원하며


만약 지금의 내 나이와 직업, 환경이 동일한 채로 아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한다. 그럼 주말을 정말 알차게 일하며, 또 쉬며 보낼 수 있었겠지. 평일 저녁과 주말 나와 상진의 일상은 얼마나 쿨했을지. 아이 덕에 새벽부터 깨느라 시작된 주말 빵 파티 대신, 우린 느즈막히 시내 카페에 가서 각자의 책을 읽었을테고, 자연사박물관이 아니라 근처 미술 전시를 본다든지, 가벼운 맘으로 쇼핑을 했을지도. ...

그렇게 보면 왜 이리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가 같이 오는지 모르겠다. 아직 팔팔한 두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 커리어적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타이밍에, 죽고 못 사는 작은 아이를 사랑하며 키우고, 모든 것에 감사하지만 늘 시간과 체력에 쫓기는 나날. ...

넉넉하지 않기에 하루하루가 빛나는 나의 이 시기를 흘려보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김소영 님(전 아나운서이자 현 사업가)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이다.

평소 ‘만약이라는 가정은 세상 쓸데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120퍼센트 이해하고 공감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분명 엄청난 일이다.

직접 임신과 출산까지 경험한 여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했으며 그보다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육아’를 함께 하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먹고 자는 모습이 그저 예쁘고, 눈을 맞추거나 옹알이라도 하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갓난아기일 때는 똥 냄새조차 향긋하게 느껴진다. 커가면서 말귀를 알아듣고 뭔가 상호 소통이 가능해지면 어찌나 신기한지! 처음 “엄마”를 불러준 순간,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힘들기도 무진장 힘들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새벽에도 2~3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먹이느라 잠을 못 자서, 수유하다 젖몸살이 나서 열이 펄펄 끓는 바람에, 이유를 알 수 없이 우는 바람에 보초를 서느라 힘들었다. 남의 집 애는 안 먹어서 걱정이는데 우리 아이들은 식탐이 있어서 늘 모자라다고 우는 바람에 달래느라 애를 먹었고, 겨울이 오면 어느새 콧물을 흘리더니 중이염에 걸려 항생제를 먹여야 했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육아의 난이도는 3배 이상 상승했다. 그나마 남편과 내가 첫째와 둘째를 각각 일대일 마크할 수 있는 상황이면 나쁘지 않지만, 한 사람이 샤워라도 하러 들어가면 그야말로 전쟁통이 따로 없다(still ing).




사실 더 힘든 건 따로 있다(어쩌다 보니 육아 고충 토로전?).

위에서 인용한 김소영 님의 글과 같은 맥락인데 이런 작은 인간들을 돌보느라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엄마 아빠도 그저 각자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30대 청년(?) 일뿐이라는 거.


스스로 ‘대단한 야망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내가 참 욕심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일만 해도 단순히 회사일이 많고 바쁜 것을 넘어 일을 더 잘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야근을 한다거나 가끔은 주말에 필요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시간이 있었으면 바란다.

육아도 절대 대충은 못하지. 어느덧 여섯 살이 된 첫째도 아직 주말에 20분 정도 외에는 영상을 안 보여주면서 나름 열심히 키우는 엄마, 나야 나.

집안 더러운 꼴은 볼 수 있나? 못 보지, 암, 못 보고 말고. 집에 없을 때는 할 수 없지만, 집에 있으면 돌돌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수시로 여기저기 밀어 대는 나 때문에 두 돌이 막 지난 우리 둘째 돌돌이 돌리는 폼이 벌써 심상치 않다.

그 와중에 10년 가까이 해온 운동도 재택근무 중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아등바등하고, 두어 달 이상 방치됐던 브런치도 놓지 않겠다며 쓰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나 못지않게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고, 나보다 훨씬 큰 야망을 가진 남편과 애 둘을 키우는 삶은 늘 빡빡하다.

친구? 가장 친한 친구들, 심지어 사는 곳도 그다지 멀지 않은 친구들인데도 분기에 한 번 만나면 다행이다.

3시간 이상 걸리는 펌이라도 할라치면, 시동생까지 소환해야 하는 처지.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에 울컥할 때도 있다.

혼자만의 시간? 그건 뭐지, 먹는 건가? 부리나케 준비해서 출근하고 퇴근하기 무섭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주말이면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게 디폴트.

지지난 주말이던가?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재밌다길래 염치 불구하고 엄마 아빠에게 애들을 맡기고 남편과 영화관을 갔는데 딱 만으로 2년 됐더라. (코로나 시국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워낙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스토리 중독자들이라 적어도 월 2~3회 영화를 보러 갔던 연애 시절을 생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자주 남편에게 투덜댄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 여유나 우아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하지만 사실 나는 ‘애 둘을 키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아직까지는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이 여유 없고 팍팍하기에 가끔 찾아오는 단비 같은 순간들(육퇴 후 넷플릭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소소한 일상, 가끔 짬 내서 하는 남편과의 점심 데이트 등)이 더 짜릿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번외

만약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 우리 엄마 등쌀에 그럴 수는 없었을 거다.

만약에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 아이를 낳지 않을 거면 결혼을 왜 하지?

만약에 아이를 둘이 아닌 하나만 낳았다면? - 남편은 그야말로 의지의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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