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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Jul 11. 2022

나와 드라마

드라마를 좋아하세요?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 보기’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된, 몇 안 되는 나의 취미다.




아주 꼬마 시절에도 주말에 할머니 댁을 방문할 때면, 할머니에게 주중에 봤던 드라마에 대해 종알종알 떠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내 나이는 대여섯 살이었다는데 여섯 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번의 현타가 온다.


첫째,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를 봤던 것인가?

참고로 나는 여섯 살 주원이에게 주말에 한해서 1시간 이내로 교육용 콘텐츠만 보여주고 있다. 역시 난 유난히 극성스럽고 컨트롤 프릭인 건가?


둘째, 그 나이에 드라마 스토리를 이해해서 제삼자에게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고?

엄마가 그다지 ‘우리 ㅇㅇ이는 떡잎부터 남달랐지~’ 추켜세우고 자랑하는 도치맘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그럼 역시 아들은 늦된 것인가, 하하하



중학생이 되고 많은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느라 드라마를 못 보게 되었다.

중1 때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등교하면 빙 둘러앉은 친구들 사이에 앉아 어제 방영된 드라마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전달하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조회하러 들어오시기 전까지 짧은 그 시간이 큰 낙이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고3 시절에도 드라마는 빠질 수 없는 내 삶의 활력이었다.

나는 강남역에 위치한 재수학원에서 수험 생활을 했다. 10시에 자습을 마치면 학원으로 데리러 온 엄마와 집까지 걸어갔는데 10시 반이 조금 안 된 시간 집에 도착하면 바로 TV 앞에 앉았다. 그리고 눈은 TV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드라마 <풀하우스>에 고정한 채 엄마가 끓여준 우동을 먹었던 게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시간에 밤마다 우동을 먹고 자도 얼굴이 붓거나 배가 나오지 않았던 어리고 튼튼한 나의 위장에, 무려 고3이 드라마를 보는데 우동까지 끓여준 엄마의 대인배스러움에 경의를 표한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는 나와 남편의 우정에서도 촉매 역할을 했다.

이쯤 되면 드라마는 정말 드라마 그 이상이 아닐까? 동아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떠드는 것 외에 우리가 찾은 첫 번째 공통의 관심사는 바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well-made 작품인지, 배우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각 캐릭터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논하면서(?) 우리의 우정이 한층 깊어졌더랬다.




일과 육아에 심신이 지치는 오늘도 나(와 남편)는 드라마를 본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남자 주인공을 보며 설렌다거나 어떤 상상을 하는 게 가능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보다 더 많이 울어서 남편의 비웃음을 사게 하기도 하는 드라마. 난 드라마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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