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로망, 꿈은 이루어진다(?)
시작은 나의 순진한 로망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당시 남자 친구가 있든 없든, 그 남자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나는 ‘몇 년만 일하다 결혼하면 남편이랑 같이 유학을 가서 공부도 하고 애한테 시민권도 주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해 줘야지~‘ 류의 꿈을 꿨다.
나와 미래의 남편이 비슷한 시기에 근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싶기는 할지, 두 사람이 다 공부할 때 필요한 학비랑 생활비는 어디서 나오는지, 특히 공부하는 중에 임신과 출산은 어떻게 할 것이며 ‘소는 누가 키우라’는 건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순진무구한 로망이 아닐 수 없다.
내 로망의 출처는? 이 역시 나중에 깨달은 거긴 하지만, 자라면서 부모님의 미국 유학시절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돈이 없어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젊을 때 한 번쯤 해외에서 생활해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레퍼토리를 들으며 일종의 세뇌를 당했던 것 같다.
아무튼 결혼할 때부터 나의 로망을 익히 알고 있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은 고사하고 해외여행도 몇 번 못 가본 그야말로 국내 토박이로 유학에는 1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미국 가서 영어까지 마스터하면 당신은 글로벌 인재가 될 것”이라고 꼬셔도 “나는 그냥 로컬 인재로 살고 싶다”던 사람. 그렇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하고 싶다는 일에 ‘No’가 없는 남편은 일단 알겠다고 한다.
다만, 결혼할 당시 남편은 지인들과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언제 회사를 정리하고 나올 수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우리는 그저 막연히 ‘언젠가 남편 회사가 정리되면 미국에 가자’ 정도로 타협을 한다. 극강의 J, 계획 세우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내가 이걸 받아들인 것도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그 와중에 나는 임신을 했고, ‘적어도 애를 낳고 1년은 키워서 가야지’ 하던 내가 만삭 무렵,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남편이 극적으로 exit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다시 2년을 묶이게 된다.
우리 이 생에 미국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