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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Dec 08. 2022

[어쩌다, 이민] 미국에서 공립학교 보내기

이렇게까지 쿨할 일인가 싶다만.

어학연수를 빙자한 1년 미국 살이 이후 약 15년 만에 돌아온 후, ‘아 그랬었지’ 싶은 포인트 중 하나는 ‘미국 사람들의 쿨함’이 아닐까?


단순하게 ‘쿨함’이라 표현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쿨하다는 게 뭔지, 이게 정말 쿨한 건지, 쿨한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 주원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이 ‘쿨함’에 또 한 번 놀라고, 부모로서의 나의 정체성, 즉 ‘나는 과연 쿨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아, 고민이 끝난 게 아니니 진행형으로 쓰는 게 맞겠다) 고민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기이이이인 손톱


등교 첫날 담임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눌 때는 보지 못했던 그녀의 긴 손톱을 등교 3일 차 morning assembly 중에 보게 됐다. 나의 꼰대력을 의심할까 덧붙이자면, 조금 긴 수준이 아닌, 아마도 인조 손톱을 붙인 게 분명한 아주아주 긴 손톱이었다. 한국 기관이었다면 미관상, 위생상, 혹은 안전상의 이슈로 다수의 학부모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지 않을까?



피드백의 부재


심하게 울거나 안 가겠다고 드러눕진 않지만, “무섭다”를 연발하고 울먹이면서 등교하는 주원이를 보내고 나 역시 눈물을 훔친 지 4일이 지났다. 하교할 때 담임 선생님을 마주치긴 하지만, 스무 명의 아이들을 부모와 매칭 시켜서 내보내기 바쁜 선생님에게서는 첫날 “He had a wonderful day” 외에 아무런 피드백도 받을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한 내가 5일 차 등교하는 주원이의 가방에 “주원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쪽지를 넣었으나, 그날 오후 이메일로 받은 담임 선생님의 피드백은 “He’s doing great and making friends”.  아, 놀랍도록 간결하다. 그리고 건조하다.



여러 가지 사전 당부


입학 서류를 제출하면서 받은 여러 안내서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예컨대 도시락과 관련해서는 ‘물은 아이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물통에 담아주세요’, 옷차림과 관련해서는 ‘벨트나 멜빵이 있는 옷은 피하세요. 단, 아이가 할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두 아이를 총 5개 정도의 기관에 보내봤지만,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었다. 부모는 으레 ‘아이가 못하면 선생님이 도와주겠지’ 기대하고, 교사들은 대체로 그 기대에 부응했다. 살짝 충격적이고 꽤 신선했다. 사실 위의 두 가지 포인트와 달리 이 부분은 마음에 드는데 스스로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율성과 독립심, 책임을 부여하기’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세상에는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다>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게 36년 평생 살면서 얻은 레슨이기에 쉽게 실망하거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연이틀 자다 깨서 울만큼 스트레스받는 주원이를 보니 좀 덜 쿨하게, 따뜻한 케어를 해주면 좋으련만… 이렇게 우리 모두 성장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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