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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Mar 14. 2023

누구나 처음은 두렵지만

아이의 축구 수업에서 인생을 배우다

두 달 전쯤, 다섯 살 첫째는 방과 후 활동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아이의 첫 스포츠로 축구를 선택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여느 또래처럼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기를.

둘째, 이왕이면 실내가 아닌 엘에이의 날씨와 자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 활동이기를.

셋째, 팀 스포츠를 통해 협력을 배우고, 함께 하는 승리가 주는 짜릿한 기쁨을 알기를(때론 패배의 쓰림도)

마지막으로 남아 치고(웬만하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싶지만, 키우다 보니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분명 있다) 섬세하고 여린 면이 있는 친구라 몸으로 부딪히고 경쟁하는 운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를.


이렇게 적어두니 몹시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 비용도 저렴하고 도보 5분 거리 공원에서 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축구 수업이 시작하고 처음 몇 주, 나는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지는 경험을 했다.


축구의 ㅊ도 모르는 상태로 데려간 내 잘못도 있겠지만, 아이는 좀처럼 뛰려 하질 않았다. 모두가 공을 향해 뛸 때도 한참 떨어져서 멀뚱하니 서있고, 골키퍼를 시켜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쭈그려 앉아있고, 모처럼 공을 차다가도 맞은편에서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친구가 있으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지금 생각하면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경계, 과격한 몸싸움이나 지나친 경쟁을 선호하지 않는 아이의 기질, 축구라는 스포츠와 룰에 대한 무지, 본인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의 부재 등 다양한 이유가 맞물려 당연한 결과값이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만의 추위가 강타했다는 엘에이에서 세 살 둘째까지 유모차에 싣고 가서 45분 동안 벤치에 앉아 덜덜 떨고 있노라면 부글부글 속이 끓더라. ‘이럴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러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이성의 끈을 붙잡았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솔직히 이성의 끈을 완벽하게 붙잡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네가 축구를 잘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우리가 수업을 온 이상, 선생님의 디렉션을 잘 따르고 최선을 다하는 건 중요해. 그렇게 하지 않아서 엄마는 실망했고, 다음부터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 정도의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했는데 담백하고 쿨하게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마 나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울그락푸르락 했을 테지.


아무튼 축구에 조금이라도 친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으면 나을까 하는 마음에 수업이 없는 날에도 종종 공원에서 축구 연습(이라고 쓰고 공놀이라고 읽는다)을 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축구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나로선 굉장한 노력이었다. 자식이 뭔지.  


 



약 한 달 여가 지난 시점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아이가 축구 수업을 즐기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발로 공을 멈추는 것도 버거워 꼭 손을 쓰던 아이가 달라졌다. 45분 수업이 짧지 않은데 쉼 없이 달리면서 공을 쫓고, 패스도 제법 정확하게 할 줄 알게 되었다. 뚱한 표정으로 먼 산만 바라보던 아이가 눈이 이글거리고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한다.

낯설었던 선생님과 친구들도 익숙해졌고, 발로 공을 다루는 요령도 좀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붙었겠지? 열심히 하니 벤치에 앉은 엄마도 물개 박수 치면서 좋아하고 칭찬받으면서 집에 가는 길은 즐겁고.      


객관적으로 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오, 저 친구는 정말 잘하네’ 싶은 아이는 따로 있고, 내 아이는 그 아이가 아니다. 여전히 어설프고 종종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두려워서 하기 싫었고 잘 모르고 못했지만,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 점점 나아졌고 성장의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경험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는 이렇게 한 뼘 더 성장했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두려워도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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