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프리스쿨 보내기
애초에 공립 초등학교 학군을 고려해서 집을 구했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 없었던 첫째와 달리, 둘째의 프리스쿨을 결정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는 한국에서도 처음 기관에 가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편이었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어리니 영어야 금방 늘 텐데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한국형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국 땅덩어리에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영어를 안 쓰고도 살 수 있다는 LA 답게 한인타운 내에는 한국형 어린이집이 여럿 있다. 그렇지만 차로 20분이 소요되는 거리(미국에서는 딱히 먼 거리가 아니지만, 오다가다 본 어린이집들의 외관상 굳이? 싶더라)로 패스!
한국형 어린이집을 제치고 나니 더 큰 난관이었다. 구글맵에 ‘daycare near me’, ‘preschool near me’를 검색하고, Yelp와 구글 리뷰를 확인했다. 리뷰들과 집에서의 거리, tuition 등을 살펴보고 적당하다고 판단된 곳에 연락해서 투어를 갔는데 조금 당황스럽고 암담했다. 한국에서 첫째 영어유치원을 보낼 때 내던 비용을 내고, 거의 공짜에 가깝던 어린이집보다 훨씬 못한 수준의 환경이라니. 신발을 신고 다니던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낮잠을 자야 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10:1에 가까운 교사와 아이들의 비율은 나를 경악케 했다.
잠깐이지만 공립학교 입학 전까지 가정보육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구글맵에서 집에서 5분 거리의 프리스쿨을 발견했는데 우리 둘째의 미국에서 첫 번째 기관이 된 이곳의 이름은 Rancho co-op preschool이다.
’Co-op‘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돈만 내고 아이를 맡기는 일반 프리스쿨과 달리 학부모가 함께 운영을 하는 기관이다. 선생님 한 분과 7명의 학부모 이사회가 주축이 되어 운영을 하고, 모든 학부모들이 주 1회 volunteer을 하면서 직접 아이들을 돌본다. 운영 시간 역시 짧은데 낮잠을 자고 3시 이후에 하원하는 여타 프리스쿨과 달리, Rancho 아이들은 점심만 먹고 12시 반이면 하원을 한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집을 보낸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아이의 순탄한 적응을 위하여(아이)
가뜩이나 낯선 환경(전혀 다른 외양을 가진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에서 처음부터 너무 긴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주 1회나마 엄마가 volunteer를 하면서 옆에 있는 게 아이의 적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국 교육에 대한 관심과 커뮤니티에 대한 니즈(엄마)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나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교육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분명 미국 교육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육아 공동체, 나아가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Rancho의 일원이 된 지 석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쉽지 않았지만, 따뜻한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아이는 적응을 마쳤다. “I’m done” “pee pee” “Here I am” 같은 간단한 문장들을 말할 줄 알게 됐고, 눈치와 제스처로 생존 중이다. 모르긴 몰라도 웬만한 말들은 알아듣는 듯하다.
나 역시 주 1회 shift가 주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적진 않지만, 나름의 재미와 보람을 찾고 있다. 나의 조금 다른 발음, 어설픈 문장들도 편견 없는 꼬마들과 친구가 되는 데에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Being mean and being friendly’에 대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circle time을 진행하면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남의 집 아이를 훈육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다른 학부모를 통해 첫째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받기도 했고,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 없이 부모들끼리 어울리는 ’Parents night out’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음 학기에는 소소하지만 이사회 멤버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요즘 나는, 매일 알을 깨고 나오는 새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