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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pr 21. 2023

[이민일기]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습니다만

미국에서 '예의'를 배우다

다섯 달 정도 지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혹은 의외의 포인트는 이 나라 사람들이 꽤나 ‘예의’를 중시한다는 거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첫째가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미술 수업에 다닐 때의 이야기다. 아이가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앞에 앉아 기다리곤 했는데 2주 연속 교사가 휴대폰 영상을 보여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보아하니 수업 내용과 전혀 상관도 없는 만화 영화였고, 아이들은 시선을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떼지 못한 채 그림은 그리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더라. 영상 노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편이라, 들어가서 ‘영상을 안 보여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함께 들어간 둘째가 나가기 싫어한다는 걸 핑계 삼아 교실에 머무르게 됐다.


그러던 중 다른 수강생 아이 한 명이 조금 장난을 쳤는데 선생님이 정색을 하면서 “무례하게 굴지 마!(Don’t be RUDE to me. I’m doing your favor right now)” 아이를 제지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 선생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있던지라 ‘뭘 저 정도 가지고 정색을 하고, RUDE 하다고 난리람? 애들이 다 그렇지.’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 학교에서 오픈 하우스(학부모들을 교실로 초대해 구경시켜 주는 행사)가 있어 방문한 날이었다. 상당히 많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첫째의 담임 선생님이 와서 묻는다. “엄마한테 이거 보여드렸니?” 선생님의 말을 못 들은 건지, 대답하는 게 부끄러웠던 건지 아무 반응이 없는 첫째에게 선생님이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I’m asking you. You don’t have to be RUDE.”


몇 달 동안 여러 모로 좋은 인상을 받아온 선생님이기도 하고, 얼마 전 상담에서도 우리 아이가 얼마나 ‘예의 바른지(polite)‘에 대해 수 차례 칭찬을 한 분이라, 지난번과는 달리 여러 생각이 들더라.




흔히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위계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그러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우리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스스로 너무 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의범절을 강요 받으면서 자랐고, 상명하복 문화에 치여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산다고 생각해서일까? 나의 세대가 자녀를 키우면서는 예의에 대한 강조가 확실히 덜하거나 혹은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여러 기관을 보내면서 ‘똘똘/똑똑하다’,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낸다’,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다’, ‘집중력이 좋다’ 같은 칭찬은 들어봤지만 ‘예의 바르다’는 류의 칭찬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나의 아이가 사랑과 존중을 받으면서 크길,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키우고, 남들 누리는 것은 다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느낌? 나 역시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행위가 아닌 다음에야 특별히 제지하지 않으면서 키웠고 말이다.




나는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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