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조무래기가 결혼의 성공을 논하다
얼마 전 남편이 불쑥 물었다.
“우리 결혼의 성공 요인은 뭐라고 생각해?”
“응? 우리 결혼이 성공했어?”
결혼의 성공, 과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부부로서 서로에게 충실했을 때, 즉 백년해로했을 때만 그 결혼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10년, 20년 어느 정도 햇수가 지날 때까지 무사하면 성공인가?
그렇다면 무사하다는 건 뭘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서류상으로 이혼하지 않았다면 무사한 걸까?
누구 하나 ‘나 죽었소’하고 참고 희생해서 지킨 결혼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진짜 성공 여부는 눈 감을 때 결론 내리더라도 다음 달에 앞둔 결혼 7주년을 기념하며 우리 결혼이 "so far"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와 성공 요인을 적어본다.
(여보, 결혼기념일 선물이야 ㅎㅎ)
일단 우리 결혼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 7년 간 여러 큰 변화들을 함께 슬기롭게 겪으면서 두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는 인생이 있겠냐만,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사만 네 번, 그중에 한 번은 무려 해외로의 이주를 경험했다. 다섯 살, 세 살 남매를 낳아서 키우는 것 역시 엄청난 변화였다. 어른 둘이 살 때와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삶, 아이가 둘이 됐을 때의 삶은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조정하고 맞춰가야 했다.
갈등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나름 의연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지나온 듯하다. 그래서일까? 낯간지럽지만 결혼 첫 해보다 지금의 남편이 더 좋고, 성숙해진 우리의 관계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우리 결혼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두 번째 이유다.
그렇다면 결혼의 성공 요인은 뭘까?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건 나나 남편이 노력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것이므로 길게 논하지는 않겠다.
다음은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우린 비슷한 점도 많지만, 참 다른 사람들이다. 남편은 ‘이 정도면 성공한 결혼이지’라고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사람, 나는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결론 내리기를 주저하는 사람인 것처럼.
사실 이건 남편이 더 잘하고 있는 부분이긴 한데 예민하고 쉽게 스트레스받고 때때로 터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마 이해도 안 될뿐더러 스트레스가 전염되기도, 가끔 황당하게 폭탄도 맞게 되는 입장일 텐데도 그저 ‘그런가 보다’.
나는 매년 초 목표가 ‘남편에게 잔소리 덜하기’ 일 정도로 여전히 노력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 건사하는 것만도 벅찬 범인, 대의 같은 건 모르겠고 일신의 영달 외에는 관심도 없는 소인배로서 그의 분주함은 여전히 이해 불가지만 말이다.
마지막 성공 요인으로는 당연하고 뻔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화를 꼽고 싶다.
대화는 빈도와 넓이, 깊이가 모두 중요하다. 각자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공유는 물론이고, 현재 기분이나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나눠야 한다. 우리 부부가 일명 ‘빨대 사건’이라고 부르는 연애 시절의 일화가 있다. 당시 뭔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말하지 않고 참던 내가 스타벅스에서 본인 빨대만 챙긴 남편에게 터진 사건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너무 사소한 문제에 불같이 화를 내는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아무튼 이후 우리는, 특히 나는 ‘엄한 데서 터지지 말고, 마음속에 있는 말은 담백하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식사 도중 아이들의 “엄마, 내 얘기 좀 들어줘” “아빠, 이거 해줘” 같은 각종 방해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주말 저녁 드라마를 보다가 “미국에서 지내면서 좋은 점 세 가지, 나쁜 점 세 가지가 뭐야?” 같은 소소한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가 1시간씩 지속되기도 한다.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을 만큼 가볍고 우스운 이야기일 때도 있고, 그보다는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일 때도 있지만,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고작 8년 차 주제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건 역시 나에게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다만 10년 뒤, 20년 뒤에 더욱 농익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해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