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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May 25. 2023

하찮고 소중한 엄마의 일상

간병 육아의 괴로움을 토하다

지난 2월 한 차례 온 가족을 훑고 간 감기가 다시 우리 집을 찾았다.


정착하고 만 6개월이 지나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 잘 적응하고, 나의 소박한 루틴을 만끽하기 시작한 찰나였다. 이례적으로 춥고 비가 많이 온 엘에이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그래, 이게 캘리포니아지!’ 쾌재를 부르기가 무섭게 그분이 또 오셨다.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침을 하고 열이 났다. 바이러스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재간이 없었던 나 역시 콧물과 재채기, 미열이 났지만 그렇다고 한들 뾰족한 수는 없다. 밥, 빨래, 육아는 계속된다. 자비는 없다.



아플수록 잘 먹어야 약도 먹고 나을 테니 밥은 더 열심히.

멀지 않은 한인타운 식당에서 시킬 수도 있지만, 마치 (잘 봐줘야) 90년대 한국 같은 분위기의 한인타운 음식은 자극적인 편이다. 하물며 비싸고 배달도 오래 걸린다.


그래, 이 와중에 빨래도 내려놓지 못하는 건 나의 성격 탓이다.

그렇지만 오늘 안 하면 내일은 누가 해주나? 쌓인 빨래를 한꺼번에 하려면 나만 힘들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오늘의 빨래를 해치운다.


아픈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칭얼대고 요구 사항이 많다.

둘 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인지 더 많이 투닥거린다. 가리는 것 없이 뭐든지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먹을 때만 되면 왜 그놈의 기침은 사정없이 터지는지. 기침하느라 밥을 못 먹는 아이들도, 양 옆에서 스테레오로 울려 퍼지는 기침 소리를 듣는 나도 고역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밤에는 열이 오를까 보초를 서느라 잠을 설치고, 낮에는 끊임없는 가사 노동에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어깨와 등은 뻣뻣해지고 신경은 곤두섰다. 잠깐 쉬려고 소파에 앉으면 들러붙는 것도 귀찮고, 2시간마다 깨서 엄마를 찾는 것도 야속하고, 기침하다가 입 밖으로 튕겨 나오는 밥알에도 비위가 상했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꼴랑 만 이틀의 간병 육아는 나의 유리 멘탈을 산산조각 냈다.

어디 한 군데 믿고 나자빠질 수 없는 이것이 바로 ‘이민자의 설움’인가 싶어 괜시리 서럽고, 아픈 애들 보다도 사정없이 갈리는 나 자신이 안타까운 내가 과연 엄마로서 자격이 있나 통탄스럽다.


그리고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이는(느껴지는) 내 삶의 기반이 얼마나 하찮은지, 잠깐씩이나마 누리는 평화가 어지나 소중한지.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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