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반려견과 더불어 살기
지난 주말, 점심을 먹을 겸 산책을 나가던 길이었다.
모든 애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딜 나갈 때 꼭 작은 거라도 장난감 하나를 손에 쥐고 나가는 습성이 있고, 그날도 어김없이 손에는 인형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몇 걸음도 채 내딛지 않았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커다란 개가 둘째의 손에 들려있던 인형을 낚아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견주는 재빨리 개에게 인형을 뱉도록 했지만, 아무리 무섭게 으름장을 놓고 힘으로 입을 벌리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었다. 덩치만큼이나 힘이 센 녀석이었고, 견주와 개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저 인형은 돌려받아도 쓰레기통 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아이에게 “인형 새로 사줄게, 저건 개한테 선물로 주자”고 말하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인 아이를 달래는데 견주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본인이 인형을 사겠단다. 배 부분이 찢어져서 꿰매기까지 한 낡은 인형이라 괜찮다고 했지만, 견주는 그래야 본인 마음이 편하다며 현금 20달러를 건넸다. 그 현금을 아이 손에 쥐어주고 조만간 같이 새 인형을 사러 가자고 이야기하면서 이 날의 사건은 일단락이 됐다.
사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샌 우리나라에도 워낙 개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미국에 와서 느낀 건 ‘아, 여긴 정말 개판이구나’였다.
개가 많아도 정말 몹시 매우 엄청 많고, 물론 작은 강아지도 있지만 송아지만 한 개들도 흔하다. 단독 주택이 발달한, 우리나라와는 다른 주거 환경 덕분이겠지만, 나처럼 개를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무서워하는 사람에겐 다소 힘든 환경이다. 또 개취이긴 하지만, ‘개를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개가 많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dog-friendly 한 것은 물론이고, 공식적으로 개를 풀어놓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원이나 비치도 꽤 있다. 뭣도 모르고 갔다가는 말 그대로 개판을 경험할 수 있다. 냄새는 덤이고.
그리고 생각보다 견주들의 행태가 후진적이다. 비단 개를 키우는 것 외에도 ‘미국은 과연 선진국일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은 종종 있는데 차차 얘기하도록 하자. 목줄을 안 하고 다닌다거나 똥을 제대로 안 치운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실제로 둘째 프리스쿨 친구 중에 공원에서 큰 개에게 물려서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가 있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목줄을 하지 않은 큰 개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만 사는 세상이냐, 더불어 살아야지'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 편안하고 안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