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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ug 14. 2023

안녕, 할머니

할머니를 추모하며

올초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한국에 들어와 몇 가지 일만 처리하고 할머니를 찾아뵈려고 했던 날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결국 지난해 출국 전에 뵌 게 마지막이 되어 버렸지만, 한편으로는 장례식장에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침 우리 식구가 한국에 와있을 때라는 점 외에도 다민이의 외래 진료가 모두 끝난 후, 증손주들 여름방학 주간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측면(아이들 방학이었다면 손녀들은 잠깐 들르는 게 다였을 테니)에서 타이밍이 좋았다. 마지막까지 자손들을 배려하는 것이 참 우리 할머니다웠다.




사실 지난봄, 엄마에게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넘어지셨고 수술은 잘 받으셨지만 상태가 별로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할머니는 워낙 조용하고 말수도 없으신 분이었고, 나와 할머니 사이에 대단한 애착이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한평생 할머니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몇 년 전 장남인 큰외삼촌이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왜 내가 아직까지 살아서 너네(자식들)한테 폐를 끼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내가 죽어야지” 하는 노인들 말은 믿을 게 아니라지만, 난 할머니의 말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위(=우리 아빠)가 사주는 밥과 용돈조차 늘 미안해하던, 지나치게 염치를 차리는 게 흠이라면 흠인 분이었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물론 슬프겠지만, 이는 할머니의 죽음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엄마가 느낄 슬픔과 상실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난 우리 식구가 출국한 후에 깊은 슬픔에 잠길 엄마가 제일 염려되긴 한다.



그래도 떠올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추억들이 있고, “우리 할머니는 이런 사람이었지” 말할 수 있어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말수는 적지만 깨알 같은 유머를 가진 분,

대학교 2학년 때 내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때 ‘물 조심, 불 조심, 남자 조심’ 신신당부하시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알뜰하게 저금한 돈을 자식 넷, 손주 일곱을 위해 아낌없이 주시던 분,

안 챙겨도 된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증손주 백일, 돌, 어린이날까지 챙겨주는 일명 ’이 준비‘ 여사님,

동시에 걱정 인형이라도 사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게 자나 깨나 자손들 걱정을 하던 ’이 걱정‘ 여사님




그동안 애쓰셨어요.

이제는 그리웠던 할아버지 곁에서 마음 편하게 행복하세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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