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수업에서 발견한 한국 vs. 미국
주원이가 올해 3월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곧 여섯 살이 되는데 이때쯤 악기를 하나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첫 악기로는 (현악기와 달리 별다른 노력 없이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는) 피아노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택했다.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주 1회 30분 수업에 50불>이라는 비용에 놀랐다. 그나마 집으로 방문하는 선생님이면 추가 비용이 붙을 텐데 우리가 가는 방식인 데다 소개해준 현지인 친구에 따르면 ‘매우 합리적인(reasonable)’한 비용이란다.
게다가 그 돈을 받고 하는 수업이라기엔 수업 분위기가 좋게 말하면 편안했고, 한편으로 루즈했다. 아이가 알만한 동요(ex. Old Macdonald has a farm, Mary had a little lamb, Happy birthday 등), 즉 우리나라로 치면 ‘학교 종이 땡땡땡’, ‘나비야’ 같은 노래의 코드를 노트에 적어주고 함께 쳐보는 식이었다. 두어 달이 지났지만, 아이는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연주(?)를 했다. 그렇지만 제 딴에는 열 곡 이상의 동요를 칠 줄 아는 그럴듯한 연주자였는지 자부심은 넘쳤다.
연습도 아이가 질릴 수 있으니 하루에 딱 5분만 하라고 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줬고, 5개의 스티커를 모으면 작은 장난감도 선물해 줬다.
부모 입장에서 약간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특유의 겁 많은 성격 때문에 뭐든 시작하는 게 힘든 주원이가 한 번도 거부하지 않는 수업인 점이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래, 너만 즐거우면 되었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한 달 동안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다. 할머니 집에는 피아노가 없기 때문에 연습이라도 하자 싶어 집 앞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했다.
우선, 회당 40분 수업, 총 15번에 30 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미국에서 지불하는 비용의 3분의 1이 채 안 되는 돈이었다. 수업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 내내 진행됐다.
하다 보니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대일로 수업을 하는 한편, 교습소 형태로 운영되는 한국의 학원에서는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학생들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차이가 있긴 했다. 이 방식은 가뜩이나 어려서 집중력도 짧고, 겁이 많아서 선생님이 나간 후 혼자 연습실에 있는 게 무섭다는 주원이에겐 쥐약이었다.
더군다나 가르치는 방식도 어쩜 내가 피아노를 배우던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지… 선생님이 30년 이상 가르쳤다는, 나이 든 분이라 더 그랬을까? 첫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보내준 영상 속에는 “3, 2, 3, 2…”를 반복하는 주원이가 담겨있었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10년 가까이 친 내가 지금 생각해도 지겨운 바로 그 ‘하농’ 이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손 모양은 동그랗게!!! 를 강조하며 손가락 연습을 반복하고, 수업 말미에는 <음표 읽기> 같은 이론을 가르치니 이후 15번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매번 피아노 학원 보내기는 전쟁 같은 일과가 되었다. (아, 그럼에도 1번 빼고 출석시킨 나도 참 징한 애미다, 하하)
초반에 기본기를 잘 다지는 게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음악을 더 잘 알고 즐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이가 다섯 손가락을 완벽하게 사용하지 않아도 좋고, 음표 대신 코드(알파벳)를 읽고 연주해도 상관없다. 그보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 가사가 아닌 코드를 흥얼거리고, 옆에서 알려주려는 나를 제지하고 “내가 할 수 있어” 자신감 있게 연주하는 모습이 훨씬 사랑스럽다.
굳이 심각할 필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