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은 말들이 모여 옥빛구슬로 빛나기를
최근에 아빠를 통해 까마득한 대학 선배님을 뵙게 되었다.
내 짬밥으로 뵙기 힘든,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인데 순전히 아빠 덕분에 가능한 자리였다. 귀한 자리인 건 알겠으나, 솔직히 불편한 마음이 컸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즐겁기 보다는 고역인 내향형 인간인 데다가 심지어 상대는 말이 ‘선배’지 너무 어르신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전업맘으로 지내고 있는 나의 모습, 딱히 부끄러울 건 없지만 대단한 선배님을 뵙기에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만남은 성사되었고, 어려운 자리였지만 좋았다. 그리고 이 날 들은 이야기들, 내 인생의 또 다른 띵언들을 기록해두려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본인이 커리어 상에서 했던 남들과 조금은 다른 선택과 도전,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얼마 전 모교 재학생 후배들에게 강연을 했는데 ‘아직 어린 대학생일 뿐인데 벌써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셨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안정적인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 우리 부부를 칭찬하셨다.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라
‘통제는 중독’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 자칭타칭 ‘통제광(control freak)’으로서 몹시 뜨끔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제한적인지 배우지만(특히 육아를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늘상 잊어버리고 통제하려고 애쓰고,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좌절한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위한 기도」 중
나 자신에게 친절해라
우리는 ‘기억자아’보다 ‘경험자아’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게 ‘기억자아’의 일이란다. 본인도 3-40대에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모두 나 자신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려면 내 선택의 결과가 훌륭해야 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간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결정, 대학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허비했던 시간들,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에 취직했던 일, 회사에서 맨날 퇴사만 꿈꿨던 시기, 결혼하면서 계획 없이 휴직하고 임신했던 일 등. 자주 돌아봤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내 작은 그릇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맥락과 의미가 없어 보이는 순간들도 언젠가 퍼즐처럼 맞춰질 것’이라는 말씀(사실 아빠가 나에게 맨날 해주는 이야기다)을 새기면서 용감하고, 통제하려 애쓰지 않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