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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Nov 27. 2023

과거의 나와 나누는 대화

그토록 눌러댔던 셔터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2010, 광화문 인근




 첫 회사 입사 후 알게된 것은 주변에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모바일이 아닌 인터넷 웹페이지가 아직 대세였던 시절, 큰 모니터에서 놀랍도록 쨍한 사진들을 보고 나는 몇 번이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을 올린 이들이 전문가도 아닌, 나의 지인들이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나도 카메라를 사면 저런 화려한 사진들을 마구 찍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기념으로 이미 노트북 한 대를 사버렸기에 나에게는 금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중고물품을 살 수 있었던 Auction 사이트에서 윗 부분이 심하게 긁힌 캐논 300D를 다소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그 때가 내 사진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후 카메라 본체(흔히 '바디'라고 부르는)는 다섯 번이 바뀌었고, 렌즈는 그 횟수를 셀 수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번거로움들을 당시에는 기꺼이 감수했다. 보안 정책이 강한 회사에 매일 카메라를 들고 가서 보안 봉인을 받고 퇴근 후 야경을 찍었다. 주말에는 무조건 3~4kg에 달하는 장비들을 메고 수도권 인근, 어떤 때는 남도 끝까지 돌아다녔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서야 온 어깨와 다리가 쑤시는 것을 감각했다. 자그마한 사진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출사를 직접 진행하고 회원들을 모으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대학 동문 선배와 만날 일이 있었다. 그 선배는 DSLR의 열풍이 있기 전, 이미 필름 카메라에 취미를 갖고 있던 분이었다. 대학 동아리방 캐비넷에는 감성적인 그분의 사진들이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선배의 흑백사진들은 늘 따뜻했고 좋았다.


 "지금은 카메라를 다 처분한 지 오래야. 지금은 수족관 꾸미기에 온 정신이 팔려있지."


 정말 의외였던 선배의 말은 나를 향한 더 충격적인 예언으로 이어졌다.


 "너도 그렇게 될거야. 사진은 좋은 취미지만 살다보면 세상에 더 재미난 것들이 많으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보다 훨씬 편하고 빠르게 아름다운 결과물들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오히려 사진을 그만두다니! 나는 절대,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평생토록 즐거운 이 카메라를 붙들며 살겠노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선배의 말이 맞아들어가고 있다.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대기업 부장의 위치에서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홀로 출사를 갔던 마지막 시기로부터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결코 침범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진'이라는 1순위 취미는, 보다 손에 닿기 쉽고 누리기 편한 다른 즐거움들에 밀려버렸다. 처음에는 가족 나들이 촬영이 늘어났고, 개인 출사 비중이 줄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는 가족들과 외출할 때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제주도 혹은 해외여행에도 카메라를 들고 가야하나 싶은 고민이 올라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족 스냅 사진을 위해 굳이 저 무거운 장비를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현재 제습함 속에 보관되어 있는 장비들은 세 달에 한 번 빛을 볼까말까 한 상황이다. 향후 10년간의 사진생활을 위해 야심차게 구입했던 외장하드의 용량 증가는 어느 시점부터 멈춰버렸다.




 며칠 전, 찾아볼 문서가 있어 외장하드를 연결시킬 일이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 찍어놓은 사진들을 발견했다. 마르고 닳도록 쳐다봤던 사진들인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주제넘은 이야기이겠지만, 스스로 가장 만족했던 사진들은 모두 내 삶이 녹록치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 사진은 외롭고, 답답하고, 때로는 죽고싶은 충동을 이겨내야 했던 당시의 나 자신이었다.


2011, 우음도



  깊이 보관된 일기장은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노트를 열어 한 줄 한 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은 다르다. 파일을 여는 순간, 아니 그 썸네일을 보는 순간 뭉클한 가슴으로 셔터를 누르던 내가 바로 보인다.


 그러나 몇 장을 계속 넘겨보다 보니, 그 생각은 내 기억의 편린(片鱗)에 불과했음을 다시 느낀다. 카메라를 들었던 나의 정서가 항상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었다. 많은 생각을 했고, 설렘이 있었고, 그만큼 고민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내 삶을 잠시 훑어 지나갔다 생각했던 사진 촬영의 시절들이, 지금의 나와 무관하지 않음도 느끼게 된다.


 원래 늘 알던 사실이지만, 지금 보아도 내 사진들은 별로다. 읽으시는 분들도 이후부터 보면 알겠지만 진짜 그렇다. 스스로 약간의 감각은 있다 생각하지만, 여러모로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글들은 사진을 감상하는 시간이 아님을 밝혀둔다. (동시에 사진에 대한 평가도 정중히 사양하는 바이다)


 그저 나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겨진 나의 이야기들을 편하게 써내려가보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전의 자신과 나누는 대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화를 통해 나는 정신없이 달려나가는 세월의 속도 가운데 잠시 쉼을 얻고 내가 걷는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주는 당신에게도 작은 의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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