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라떼 Jan 01. 2024

똑같은 세상, 또다른 세상

로우 앵글로 바라보기



"제가 찍는 사진은 왜 다 이모양일까요?"


잘 찍지도 못하지만 어쨌든 그럴듯한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는 이유로 이런 질문들을 지인들로부터 몇 번 받았다. 나 역시 사진을 배워가며 여러 장벽들을 마주할때마다 동일한 한숨을 내뱉곤 했다. 특히 초기에는 그런 생각이 유독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센스있는 사진들을 얻기 위해 어떤 부분들은 시간과 경험을 요했지만, 어떤 부분은 단순한 지식 습득만으로 해결되기도 했다. 그 중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앵글'이다.



한때 인터넷 유머게시판에서 떠돌던 사진들을 가져와 보았다. 위 사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망측스런 포즈에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처음엔 웃었지만, '사진에 대한 진정성은 있는데?'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사진들이 밋밋하고 획일적이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늘 꼿꼿이 선 채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늘 비슷한 눈높이 앵글의 사진이 나온다. 실제로 갤러리 폴더에 들어가서 보면 사진들의 시선 높이가 다 비슷하다.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을 때 무작정 여의도 공원으로 단독 출사를 나갔다. 하지만 막상 찍을 거리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동호회 실력파들의 사진을 보면 풀 한 포기에도 남다른 아름다움이 돋보이던데 내가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꽃 한 송이는 평범 그 자체, 다를 것이 없었다. 아웃포커스가 문제였나 싶어 단렌즈를 추가로 들였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복적인 필드 테스트(즉 출사)를 통해 가끔 마음에 드는 사진이 얻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 생각했고, 어떻게 찍어야 색다르고 좋은 사진들을 얻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봄날, 서울대공원 나들이 중이었다. 계단 양 옆으로는 수로를 따라 정원에 갖가지 색상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우연히 조금 먼 곳에 있는 양귀비 한 송이를 보게 되었다. 그 꽃만 수로 바로 위에 늘어진 채로 있어 물과 함께 잘 어울렸다.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200mm의 망원렌즈를 갖고 있던 터라 거리가 먼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하필 정원 계단이 부분 공사중이라 낮은 계단에서 몸을 비틀어 구도를 잡아야 했다.


2009, 서울대공원

강제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양귀비 사진은 그날 유일하게 건졌던 한 장이었다. 정원의 계단이 공사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위에서 앵글을 잡았을 것이고, 평소와 똑같은 평범한 사진을 얻었을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사진찍는 시선의 높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주로 직립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키높이에서 쳐다본 세상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사진도 그 높이에서 찍는다면 평범함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사진의 목적이 일상 기록용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무언가 색다른 시선의 사진을 건져보고 싶다면 피사체, 즉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높이를 이리저리 바꿔볼 것을 권한다. 이것을 앵글(Angle)이라 부른다.

2010, 광화문




앵글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먼저 촬영자가 서 있는 자세에서 피사체를 바라보며 찍는 아이 레벨 (Eye Level) 앵글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일상을 살며 자신보다 작은 피사체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대부분 아이 레벨 앵글 사진이 나온다. 키가 큰 사람이 단체사진을 찍으면 그 멤버들이 숏다리로 나오는 참사(?)가 발생한다. 위에서 소개한, 다소 민망하고도 웃긴 포즈를 취한 이들은 그나마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 지는 아는 사람이다.


다음으로 한층 높은 시선에서 아래를 향해 촬용하는 하이 앵글이 있다. 하이 앵글을 잘 활용하면 피사체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매우 독특한 사진을 얻어낼 수 있다. 특히 광각렌즈를 잘 활용하면 하이 앵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느낄 수 있다.

2017, 가평


마지막으로 낮은 눈높이에서 찍는 로우 앵글이 있다. 올려다보는 세상의 높이는 매우 색다르다. 하늘이 쾌청하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인물사진의 경우 다리를 길게 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추천하지만 화각이 광각일 경우 얼굴이 뭉개져 나올 수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2008, 창원


로우 앵글은 사진을 입문하는 사람에게 여러모로 낯설 수 있다. 일단 자신의 허리를 숙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대 사격에서나 취했던 엎드려쏴 자세를 요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허리를 숙이고 앉아 다리를 찢어야 하는 고통스런 상황도 맞이한다. 낯선 시각인만큼 바라보게 되는 구도도 매우 신선하다. 로우 앵글로 찍다 보면 '내가 다니던 길에 이런 세상이 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2011, 신문로




나는 인물사진이 아닌 경우, 표준 혹은 준망원 렌즈를 활용한 로우앵글 사진을 주로 찍는다. 내가 숨을 쉬는 높이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우앵글에 익숙해지면 내가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굳이 먼 곳으로 출사를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찍을 것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 촬영을 취미로 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유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함과 루틴한 일상에 찌뜬 나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2012, 가평


높은 곳, 화려한 곳만 추구하며 정신없이 달려가는 삶에서 내 아래쪽을, 그들과 같은 눈높이가 되어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해 준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작은 풀 한포기에도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생활과 삶이 느껴진다.


2022, 용인


내가 허리를 숙이는 만큼, 내가 옷을 더럽히는 만큼 사진은, 아니 세상은 나와 친구가 되어 준다. 좀 더 그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마크로렌즈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들의 세상을 엿보는 것이 즐거워 나는 이리저리 뒹굴며 구도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뭐 어떤가. 내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에 비하면 남의 시선 따위는 고려할 거리가 아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카메라는 스위블(Swivel) 액정이 장착되어 있다. 뷰파인더 대신 회전이 가능한 액정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며 로우앵글 촬영을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신세계와도 같은 경험이었다. 더이상 옷을 더럽히지 않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도 예전과 같은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요즘도 봄, 가을 한 번씩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을 담아온다.


이렇게 편한 세상이 되었으니 당신도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스위블 액정이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그런 기능이 없더라도 용기내어 조금만 몸과 허리를 숙여보라. 평소에 보지 못했던 세상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2020, 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