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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an 15. 2024

결혼식 사진 촬영 Tip 10

메인이 아닌 서브로서

대학 졸업 즈음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는 격주, 혹은 매주마다 회사 동료, 혹은 대학 둥문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월급 통장에서 축의금으로 나가는 비율이 만만찮았던 시절이었다. 특히 2006년은 '쌍춘년'이라는 마케팅 덕분에 결혼 러시가 폭발적이었다. 회사 동기 중 한 명은, 매주마다 1~3건의 축의금을 준비하게되니 쌍춘년이라는 단어가 마치 욕처럼 들린다고 했다. 주말이 되면 결혼식장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시절이 그때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결혼식에 참석할 일은 줄어들고 장례식에 참석할 일은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지겨울 정도였던 결혼식장 분위기는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밝게 웃으며 지인들을 만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늦깎이 결혼을 하는 후배들의 청첩장이 몹시 반갑다.


사진을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15년 전 DSLR 광풍의 분위기를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결혼식에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메인 사진사보다 더 좋은 장비들을 들고 촬영을 하곤 했다. 어떤 결혼식에는 서브 사진사가 2명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 고급 장비는 ... 나는 그만큼은 아니었다)


이전 글에서 썼듯, 나는 꽤 많은 선, 후배, 동기들의 결혼식 사진을 촬영했다. 부탁을 받으면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는 한 거절하지 않았다. 모든 보수도 일절 사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날을 담아내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밤새도록 결혼식 사진들을 편집하며 신랑 신부 얼굴에 흐뭇해하던 그 시절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50번 정도의 결혼식 사진을 찍다 보니 서브 촬영자로서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겪게 되었다. 요즘은 카메라 인기가 예전만큼은 아니라, 서브 촬영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지만, 아무튼 다년간의(?) 결혼식 촬영 경험을 바탕으로 10가지 팁을 정리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결혼식장에 일찍 도착하라 (최소 1시간 전)

당연히 절대 늦어서는 안 된다. 결혼식에 맞춰 도착할 자신이 없으면 찍어주겠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을 담아내는 역할을 맡았는데 식에 늦어버리는 것은 큰 실례다.

그리고 사진사의 미션은 결혼식 30분 전부터 시작이다. 신부대기실을 비롯하여 찍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메인 사진사가 있지만, 나도 옆에서 모습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하객들을 맞이하는 신랑과 부모님들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2. 예식장 환경을 파악하라

일찍 도착해서 미리 식장 구조를 파악해 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 전문 예식장 홀은 크기에 따라 중앙 라인 좌우를 자유롭게 건너가기 어려운 곳이 있다. 교회나 성당같은 곳은 천장이 매우 높아 보조 조명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곳은 신랑 신부 입장하는 코스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환경들을 인지하고 촬영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3. 식순을 확인하라

나는 결혼식장에 도착하면 순서지부터 챙겨 유심히 보았다. 많은 경험이 쌓였을 때도 반드시 순서를 확인했다. 예식에 따라 독특한 순서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특정 순서가 하이라이트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미리 예상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셔터를 누르지 못했던 안타까운 순간도 경험했다.


4. 메인 사진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결혼 사진을 계속 촬영하면서 나름 대담해졌다. 처음에는 쑥쓰러워 저 멀리서 찍던 것이 나중에는 식장을 종횡무진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보니 메인 사진사들의 동선과 겹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메인 사진사로부터 불편한 심경을 전달받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자꾸 그분의 구도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서브는 어디까지나 서브다. 신랑과 신부는 본식 사진을 공식적으로 남기기 위해 메인 사진사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분들은 받은 돈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결혼식의 중요 장면들은 메인에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


5. 가족들과 하객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아내라.

서브 사진사의 역할은 이런 부분에서 중요하다. 결혼식 앨범을 사진업체로부터 받고 나면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진이 상대적으로 적다. 주인공이 신랑과 신부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신랑과 신부는 내 결혼식에 참석해준 사람들을 보고싶어한다. 그래서 서브가 그들을 좀 더 세밀하게 촬영해주면 신랑 신부에게 큰 선물을 줄 수 있다. 아까 말했듯이 식전 가족들의 모습, 자리에 앉아 결혼식을 지켜보는 하객들의 표정, 축가를 불러주는 모습, 피로연때 즐거운 표정들 등등은 서브 사진사가 잘 담아낼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신랑 신부가 친구 하객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을 때 가장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메인 사진사는 정면에서 조명과 구도를 준비하고 있고 하객들은 서로 신나게 떠들며 즐겁게 웃고 있다. 그런 다양한 표정들은 단체사진의 굳어있는 표정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다.



6. 주인공은 신부다

사실 이게 1번으로 갔어야 했는데 어쩌다 6번으로 오게 되었다. 사진 촬영에 있어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가 아니다. 그냥 신부다.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신부만 예쁘게 나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반대로 다른 사진들이 다 좋은데 신부가 안 예쁘게 나오면 당신은 실패다. 그래서 결혼식 사진 촬영이 어렵다.

신부의 모습을 잘 촬영할 수 있는 순서는 당연히 주례다. 메인 사진사도 촬영을 하지만 당신도 열심히 신부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으라.



7. 눈깜짝할 새 지나가는 식순이 있다.

신랑 입장은 5초 이내로 끝난다. 나는 언제나 이게 어렵다. 신랑은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지 않는다. 너무 신이 나서 달려오는 신랑도 있다.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치지만 그 짧은 순간, 그리고 조명이 부족한 식장에서 초점을 맞추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어어 하다가 신랑입장은 끝나버린다. 거기에서 좌절해서 머리를 감싸쥐다가 신부 입장도 허둥지둥 놓치게 되기 일쑤다. 아마추어로서 팁을 주자면, 신랑 입장은 클로즈업보다 넓은 구도를 잡으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심도도 깊게 잡는 것이 좋다.

신부 입장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신부 입장은 신부 아버님이 함께한다. 신부의 아름다운 표정이 우선순위이지만 아버님의 표정도 잘 담아내면 좋다.

신랑 신부 행진 전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가 있다. 보통 그 때는 가슴 뭉클한 표정들이 나온다.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 부모님들은 뒤통수만 나오게 되고, 부모님을 정면으로 찍으면 신랑 신부의 (특히 신부의) 표정을 담을 수 없다. 그렇다고 옆 모습을 찍으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고민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요는 미리 생각하라. 그날 분위기를 보고 반드시 찍어야 할 구도를 선택하라. 희생할 부분들이 있으면 희생하고 우왕좌왕하지 말라.



8. 예식의 특성을 확인하라.

기독교, 천주교식 결혼식은 예배나 미사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독특한 식순이 있다. 불교나 전통혼례의 경우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종교적 예식은 별도로 분위기나 순서를 고려해야 한다.

나의 지인들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예배 형식의 결혼식 촬영에 익숙하다. 그럼에도 한 번은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주례를 하는 단상이 꽤 높았다. 식 직전에 구도를 살펴보려고 올라가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 주례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불호령을 들었다. 거룩한 강대상에 어디 함부로 올라가냐는 말이었다. 나는 황급히 내려왔다. 조금 황당하기도 했지만, 강대상에 올라가지 못하다 보니 주례할 동안 촬영에 한계가 있었다. (아니, 그런데 메인 사진사는 거룩한 강대상에 올라가 있어도 문제없다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봐도 이건 좀 그렇다) 이런 돌발상황에서 망원렌즈를 챙겨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9. 결혼식에는 표준화각 줌렌즈에 스트로보를 가져가면 무난하지만, 사실 다다익선이다.

결혼식은 대부분 실내 촬영이다. 그렇기에 여러 렌즈를 선택할 수 없다면 약간의 광각과 약간의 준망원이 가능한 24~70mm의 줌렌즈가 가장 좋다. 나의 경우 경험이 쌓이니 단렌즈로 대부분 커버했지만, 그 때도 50mm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스트로보 사용은 많은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다. 노하우가 쌓인다면 결혼식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이 준비해도 결혼식에는 돌발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다. 식장이 협소하거나 하객들이 지나치게 많을 때 이동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때는 차라리 손떨림 보정 기능이 탑재된 망원렌즈가 유용하다. 그러므로 조금 번잡스럽더라도 많은 장비를 들고 가면 좋다.


10. 여분의 배터리, 여분의 메모리 카드를 꼭 챙겨라

결혼식은 다시 하지 않는 예식이다. 지나가버린 순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식 때는 셔터를 평소보다 엄청 많이 누르게 된다. 어찌되었건 잘 나온 사진만 건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배터리도 금방 나가고 메모리카드도 순식간에 full이 된다. 요즘에야 대용량 메모리카드도 많지만 예전에는 여분으로 챙겨가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주례를 시작했는데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여 보니, 스페어 배터리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그 시점으로 그날 결혼식 사진은 끝이었다. 결혼식 사진을 저장해놓은 외장하드가 고장나 고생만 실컷 하고 신랑 신부에게 사죄의 변을 보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튼 사소한 실수로 인한 사고는 미리미리 방지해야 한다.




쓰고보니 한 가지가 더 있다.

찍은 사진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지 말기 바란다. 편집이 좀 덜 되었더라도 가급적 일찍 신랑 신부에게 전달해 주라. 나의 경우 결혼식 한 번에 3~400장의 사진을 찍었던지라 이것들을 다 편집하려면 사실 막막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마법의 편집도구인 어도비사의 라이트룸도 없었다. 회사가 바쁘다보니 자꾸 편집할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류의 일들은 '꼼꼼히', '잘' 하려고 했다. 그래서 편집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으면 절대 본인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이런 횡포?를 부린 것이다) 어떤 경우는 10개월이 지나서야 끝낸 적도 있다. 

그러나 신랑 신부는 목을 빼며 사진을 기다린다. 편집이 덜 되었더라도 보고싶어 한다.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혹여나 지금 서브 찍사로서 활약하기 원하는 당신에게 주는 팁이기도 하다.


내가 찍어준 신랑 신부들은 지금도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주례 선생님만큼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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