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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26. 2015

병렬형 보고서의 레벨링(Leveling) 작업

이 작업이 잘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쉬운 내용도 엄청 복잡해 집니다.

본사 영업팀에서 근무하는 윤 대리는 우울한 표정으로 채 차장에게 갔습니다.


"무슨 일이야 윤대리?"

"부장님께... 1/4분기 매장별 마케팅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드렸는데요."

 "그런데?"

"마음에 안드신다고... 차장님께 한 번 보여드려 보라고 하셔서....."

"음.... 김 과장이 하계휴가라서 윤대리가 대신 작성했구나. 어디 이리 줘 봐."


채 차장은 윤 대리의 보고서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이고... 부장님이 화내실 만 하네."

"많이... 잘못되었나요?"

"일단 부장님께 빨리 재보고 드려야 할 것 같으니, 가감없이 말 할께. 일단 너무 복잡하고 뒤죽박죽이야."

"......"



윤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해가 되시나요?





제목 : 1/4분기 매장별 마케팅 활동 결


ㅁ 일산점

    ㅇ 유명 가수 초청행사 실시 (3/1)

    ㅇ 2주간 특별 할인행사 진행 (3/1~14)

    ㅇ 고객 Claim 발생 (불량품 관련 5건)

    ㅇ 지역주민 관심 증가로 행사기간 연장 검토


ㅁ 대구점

    ㅇ 축구선수 사인회(4/5), 멤버십 할인 실시(4/7~)

    ㅇ 마케팅 활동 대비 매출 저조

    ㅇ 점포 주변 거주자 소득 수준 낮음


ㅁ 광주점

    ㅇ 멤버십 대상 혜택 확대 (4/7~)

    ㅇ 효과 : 분기 매출액 00억 증가 (00%)

    ㅇ 방문 고객 증가로 리노베이션 검토 중

    ㅇ 인근 지역 경쟁사 입점으로 대안책 수립 필요


ㅁ 마케팅 활동으로 인해 전년대비 매출 00% 증가 (00억)


ㅁ 매장별 현안에 대한 본사 지원 필요




레벨링에 실패하면 보고서 이해도는 확 떨어집니다



윤 대리는 매장별 1/4분기 마케팅 활동 내역과 실적, 그리고 특이사항들을 잘 조사했지만 그 내용을 보고서로 정리하는 데는 심각하게 실패했습니다.


보고서 각 항목은 제목, 소제목, 내용1, 내용2.... 등으로 구성되는데, 병렬 형태로 작성될 경우 각 항목의 수준(Level)은 일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윤 대리의 보고서는 매장별로 하위에 있는 내용이 제각각이고, 순서도 뒤죽박죽입니다.


- 일산점에는 활동 내역이 2개로 나뉘어져 있고, 대구점과 광주점은 1개로 묶여져 있습니다.

- 광주점에는 매출액과 증가율이 적혀져 있는데 일산점과 대구점에는 없습니다.

- 그리고 하위 항목의 순서도 제각각입니다.


보고서 작성자 본인은 내용을 이해할 지 모르나, 보는 사람에게는 쉬운 내용도 헷갈리게 만드는 구성인 것입니다.


보고서, 특히 병렬형으로 작성되는 보고서에 있어서는 각 항목별 구조(structure)를 설계하고 그에 맞춰 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보고서는 아래와 같은 형태로 작성이 됩니다.


ㅁ 소제목1

    ㅇ 내용1

         .세부내용1

         .세부내용2


이런 형태로 소제목들이 병렬형으로 나열된다고 할 때, 각 소제목과 하위의 항목들은 동일한 수준으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저는 이 작업을 레벨링(Leveling)이라 부르겠습니다.


마케팅 관련 내용의 윤 대리의 보고서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목은 '맛있는 과일들' 입니다. (실무와는 전혀 관계 없는 주제입니다만 ㅠ)




제목 : 맛있는 과일들


ㅁ 사과

    ㅇ 빨갛고 둥글게 생김, 꼭지가 있음

    ㅇ 씨앗이 속에 있음


ㅁ 바나나

    ㅇ 주로 필리핀에서 수입

    ㅇ 노랗고 길쭉함


ㅁ 포도

    ㅇ 바나나에 비해 상큼한 맛

    ㅇ 가끔 껍질까지 먹는 사람이 있음


ㅁ 내가 좋아하는 과일 : 사과


ㅁ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 : 포도




친숙한 소재라서 이해하기는 쉽지만, 정돈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 사과에는 외형과 씨앗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바나나에는 원산지, 외형의 내용이 있습니다.

- 포도는 앞의 두 과일에는 없는 '맛'과, '먹는 습성'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 아울러 과일 단위로 나열되던 소제목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과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과일'이 튀어나옵니다.


산문이나 수필을 쓴다면야 어떻게 쓰든 상관이 없겠습니다만, 보고서에서는 정형화 된 구조에 맞춘 일관성 있는 작성이 필요합니다.  특히 병렬형 보고서에서 잘 설계된 구조와 패턴은 읽는 사람의 이해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일단 '맛있는 과일들' 을 좀 고쳐봅시다. 섞여 있는 내용들을 아래와 같은 구조로 정리하겠습니다.


ㅁ 과일명

    ㅇ 과일의 외형

    ㅇ 원산지 (재배지)

    ㅇ 씨앗의 위치

    ㅇ 좋아하는 사람


보고서 내용이 이 구조를 잘 따라가 준다면 과일별 내용들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과일명과 동일선상에 있던 '내가 좋아하는 과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과일' 항목도 각 과일의 하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한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제목 : 맛있는 과일들


ㅁ 사과

    ㅇ 빨갛고 둥글게 생김, 꼭지가 있음

    ㅇ 상주, 영주 등에서 재배

    ㅇ 씨앗이 속에 있음

    ㅇ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함


ㅁ 바나나

    ㅇ 노랗고 길쭉함

    ㅇ 주로 필리핀에서 수입

    ㅇ 가운데 점 같은 씨가 있음

    ㅇ 가족들이 즐겨 먹음


ㅁ 포도

    ㅇ 동글동글한 보라색 알맹이

    ㅇ 전국적으로 재배, 수입도 함

    ㅇ 알맹이 안에 단단한 씨앗이 있음

    ㅇ 우리 동네에서 가장 인기있는 과일




그러나 레벨링 작업은 (과일 분류와는 다르게) 어렵습니다.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이 과일 분류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병렬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딱 이런 구조대로 작성하면 되겠네. 금방 끝나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막상 타이핑 하기 시작하면 내용이 꼬이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실무에서는 각 항목을 구조(Structure)대로 쓰기에 장애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윤 대리의 사례에서, 만약 대구점의 매출 효과가 현저히 낮은 상황이라 가정할 때, 그것을 굳이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면 고민이 생깁니다.

- 병렬식 구조에 세팅한 대로 대구점의 매출액을 적자니 긁어 부스럼입니다. (대구점의 오너를 본사로 호출할 수도 있고, 대책 수립이라는 커다란 지시가 추가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 그렇다고 대구점만 매출액을 빼자니 확 티가 나버립니다 ("대구점은 왜 매출액이 없지?"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 그러면 매출액을 전부 빼버릴 것인가? 만약 상사가 숫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매출액을 제외했다는 사실 만으로 이 보고서는 통과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일산점 마케팅 활동중에 고객 클레임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이는 주요한 상황이라 보고내용에 포함 시켜야 한다고 가정할 때,

- 다른 매장에도 클레임 내역을 포함시킬 것인지?

- 일산점의 문제로 인해, 다른 매장의 부정적 내용들도 굳이 보고서에 끌려(?)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 매장들의 수가 10개이고 일산점만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 구조를 맞추기 위해 굳이 나머지 9개 매장 항목에 '클레임 발생 : 0건'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야만 할 것인지?

등등의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제가 쓰는 글이 안타깝게도 죄다 이런 식입니다만) 일률적 솔루션은 없습니다. 상사의 성향에 따라, 보고 목적에 따라, 당시 분위기와 회사 트렌드에 따라 다양한 해결책들이 나와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만 할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병렬형 내용이 들어가는 보고서 작성시 하나의 구조가 각 항목에 완벽하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보고서 내용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각개 출구전략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도 레벨링은 잘 맞춰야 합니다


저는 보고서의 quality는 고민한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보고서는 엉덩이 싸움입니다). 레벨링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깊은 고뇌와 회의, 추가조사 등을 잘 거치기만 한다면, 예외사항들이 잘 부각되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구조로 보고서가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시간만에 뚝딱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갔다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재작성하기 위해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타 부서 사람들과 회의를 가지고, 홀로 밤늦게까지 며칠을 씨름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보고서가 통과된 후, 처음 작성했던 보고서와 비교를 해 보니 제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생각 안 하고 썼었구나'

 





깔끔히 레벨링 작업은 첫 번째 항목만 봐도 이후 항목들이 어떤 패턴으로 전개될 지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며, 결과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한 눈에 들어오는 보고서'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그룹핑(Grouping)을 계속 바꾸거나, 최악의 경우 보고서 자체를 두 개로 쪼개야 할 상황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 보고서 작성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보고받는 사람의 성향과, 회사의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많은 고민과 정보 수집, 판단력을 필요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채 차장이 수정해 준 보고서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독자 분들의 업무 경험과 스타일이 다르기에, 모든 분들에게 nice하게 느껴지지는 겠지만 윤 대리의 초안에 비해서는 많이 깔끔해진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 : 1/4분기 점포별 마케팅 활동 결과


ㅁ 개요

     ㅇ 1/4분기 3개 매장 마케팅 활동 및 결과


ㅁ 매장별 활동내역 및 실적

    ㅇ 일산점

         - 주요 활동

             .유명 가수 초청행사 (3/1)

             . 특별 할인행사 (3/1~14)

         - 활동 결과

             . 매출액 00억 증가 (00%)

         - 특이사항

             . 불량품 고객 Claim 발생(5건)

             . 지역 주민 관심 증가로 행사 연장 검토


    ㅇ 대구점

         - 주요 활동

             . 축구선수 사인회 (4/5)

             . 멤버십 할인제도 실시 (4/7 ~)

          - 활동 결과

             . 매출액 00억 증가 (00%)

          - 특이사항

             . 실적 부진에 대한 대안 필요

               (매장 주변 소득수준 낮아 효과 미미함)


    ㅇ 광주점

         - 주요 활동

             . 멤버십 대상고객 혜택 확대 (3/15~)

         - 활동 결과

             . 매출액 00억 증가 (00%)

          - 특이사항

             . 매장 리노베이션 검토중 (방문 고객 증가)

             . 인근 지역 경쟁사 입점으로 대안수립 필요


ㅁ 전체 결과

    ㅇ 전년 대비 매출 00억 증가(00%)

       * 대구점 실적 부진에 대해서는 대안 수립 중


ㅁ 기타 사항

    ㅇ 매장별 현안에 대한 본사 지원계획 수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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