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들의 좋은 습관 중 하나
박길동 대리는 성격상 무언가를 치밀하고 은밀하게 준비해서 '짠' 하고 보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이벤트의 대가입니다.
결혼 3주년을 맞아 그는 아내에게 알리지 않은 채 당일 오후 반차를 내고 파티 용품을 구입하여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저녁, 퇴근하는 아내가 번호 키를 누르고 문을 열자 어둠 속 촛불과 꽃으로 만들어진 길이 방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박대리가 준비한 와인과 케익이 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눈이 이만큼 커진 아내는 멍 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선물 순서 ㅡ 박 대리는 미리 구입해 둔 목걸이를 내밀었습니다. 아내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정말 센스 있어 좋아. 어쩜 날 위해 이렇게 많은 준비를 했어?"
한편,
다음날 회사에서는 파트장님과 함께 진행하는 월간회의가 있었습니다. 업무 담당자별로 실적과 계획을 보고하고 박길동 대리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리가 한 달 가량 준비한 보고서는 30초만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아니, A 거래처는 지난달에 우리 부서랑 계약이 끝났잖아. 그런데 저 거래처 기반으로 다음 분기 공급 전망을 분석한거야? 무슨 소리 하는거야 지금?"
박 대리는 물론이고 모든 파트원들이 얼빠진 얼굴이 되었습니다.
"강 과장, 일할 때 박대리랑 소통 안 하나? 어떻게 자료가 저런 방향으로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강 과장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제가 지난 주까지 출장을 다녀오느라 미처.... 어쨌거나 한 번 확인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파트장님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를 끝까지 훑어보았습니다.
"허 참, 내용은 알차게 준비했다만.... 고생을 이렇게 많이 한 게 헛수고가 되어버렸네."
파트장님이 나가시고 회의실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 졌습니다. 강 과장의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박 대리, 내가 엊그제도, 어제도 다음 분기 예상 보고서 내용 물어봤었지? '잘 되고 있으니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었지? 그런데 이게 뭐야?"
"........."
"구매 파트에 전화 한 통화 확인해보면 될 내용을 ... 아휴 참...."
".... 좀 더 꼼꼼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 그런데 박 대리가 쓰던 보고서, 중간에 나한테 한 번만이라도 보여줬으면 이런 대형사고는 없잖아?"
"......."
"이 기회에 박대리 일하는 습관 좀 고쳐봐. 기왕 이 일이 터졌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평소에 박대리 보면 일하다가 나한테 확인받거나 물으러 오는 게 없어. 어떤 때는 파트장님께 보고할 때 예상치도 않은 내용이 들어가서 내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들도 많아."
강 과장은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후배들한테 깐깐하게 하나씩 간섭하는 거 싫어서 박대리한테 스트레스를 안 주는 건데,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별도 보고를 의무적으로 받을거야."
박 대리는 성향상 자기 스타일이 강하고, 준비 과정을 공개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아내에게 준비하는 이벤트라면 허용이 되겠지만- 회사에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박 대리의 문제는 상사의 무관심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중간 보고의 중요성' 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중간 보고란, 말 그대로 최종 보고하기 전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검토받는 것을 말합니다. 중간 보고는 많은 부분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실행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중간 보고는 왜 중요한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중간 보고를 통해 -박대리의 사례처럼-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루틴한 일이 아니라 새로 기획해야 하는 업무의 경우, 혹은 애매한 상사의 지시를 받았을 경우 중간 보고는 필수입니다.
가령, 상사의 지시로 신규 기획안을 작성할 때 현황 분석을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진행 방향에 관해 반드시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의견을 물어야 합니다. '별 코멘트 없겠지'라고 생각했던 건들이 의외로
"조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몇 가지 내용을 더 넣어야지." 라던가,
"이건 조사하지 말고 내가 상위부서에서 받아놓은 자료를 줄테니 그걸로 사용해." 라는 답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간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재조사를 해야 하거나, 헛수고를 하는 일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건 내가 생각하던 방향이 아닌데."라는 피드백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기에 중간 보고를 한 것이었다면 정말 다행인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 이처럼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중간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상사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업무 지시를 한 상사 역시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정말 종종 있는 일입니다) "이런 걸 해 보면 어떨까?", "이것 좀 이렇게 해결해 보자고." 라고 말은 뱉었지만 그 상사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과, 입으로 나온 지시와 따로 놀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상사는 실무자가 들고 오는 보고서 초안을 거듭 검토하며(= "내가 말한 건 이게 아니라..."라고 계속 말하며) 자신의 방향을 구체화하곤 합니다.
사실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긴 합니다만, 이런 상사에게 중간 보고를 하지 않으면 최종 보고 때 엄청난 호통을 들을 것이고 보고서 작성자는 '처음에는 저렇게 말하지 않았어.' 라며 억울함에 입술을 깨물 것입니다.
난관을 쉽게 넘을 수 있다
일을 추진하다 보면 막히는 순간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 중 상당수가 부서장이나 상사의 권한을 사용해서 풀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상사에게 그 문제를 이야기하느니 혼자 풀어보겠다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합니다.
저의 경우,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타 부서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타 부서는 당시 결산 작업으로 몹시 바쁜 상황이었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제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은 채 "너무 바쁘니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나중에 보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메일을 보냈으나 읽지도 않았습니다)
이틀을 기다리다 도저히 일이 진전되지 않을 것 같아 결국 부서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부서장님은 바로 타 부서 파트장에게 전화를 하셨고, '다른 담당자를 통해 데이터를 주겠다'는 답변을 받아오셨습니다. 좀 더 일찍 중간 보고를 했다면 저는 이틀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조금 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이게 잘 안돼요" 라고 말하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라는 퉁명스러운 답변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풀리지 않는 장애물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몇 가지 대안들을 고민하여 상사가 그 중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면 상사는 다른 대안들도 쉽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다
최종 보고시 보고 자료에 대한 책임은 작성자가 져야 합니다. 그러나 중간 보고를 충실히 한다면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중간 보고를 통해 보고서 작성 방향을 거듭 수정해 주고, 필요한 자료를 추가적으로 지시한 사람이 바로 내 상사이기 때문입니다.
최종 보고해야 할 대상이 임원이라면 중간 보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 자기 부서 간부나 선배에게 중간 보고를 하며 (위 사례에서는 강 과장) 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더러, 만약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나 혼자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보고서를 검토해 준 사람도 함께 부담을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배나 중간 간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떤 상사에게 중간 보고를 하는 것이 좋은가?
방임형
부하 직원에게 간섭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스타일이 이에 속합니다. 일의 진척도를 점검하고 필요할 때는 긴장감도 조성하는 것이 관리자의 역량임에도, 이 부분에 약점을 가진 상사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가 스스로 찾아가지 않으면 최종 보고 때까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대형 사고가 터질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왔다갔다 형
앞서 설명드린, '내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나도 모르겠어' 라는 상사가 이에 속합니다. 지시하고 싶은 것이 마음속에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 하지 못해서 부하 직원 모두에게 어려움을 주는 유형입니다. 이런 상사는 지속적인 중간 보고를 통해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고생하게 되니까요.
Only 질책 형
"이건 아니잖아" 라는 말 뿐, 어떻게 바꾸고 고쳐야 할 지 알려주지 않는 상사가 있습니다. 왜 잘못되었는지는 말해주지만, 이떤 방향으로 수정하라는 대안은 가르쳐주지 않는 형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초안을 들고 가서 물어보며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 "이렇게 실력이 없어? 내가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려줘야 해?" 라는 상사의 말에 처음에는 위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상사의 언어' 였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방향을 알려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저의 말(사실 지렁이 기어들어가듯 간신히 얘기했음;;;)을 기뻐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중간 보고를 왜 안할까?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저에게도 중간 보고는 큰 부담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을 천성으로 갖고 있는 데다, 터프한 상사에 쉽게 위축되는 성향 때문이지요. (글을 쓰며 이율배반적인 제 자신을 종종 경험합니다 ㅠ )
많은 좋은 점이 있음에도 중간 보고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요?
추가 과제 발생
욕심 많은 상사는 중간 보고를 받다가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들면,
"이것도 해 보자고." 라는 추가 지시를 내립니다. 중간 보고 없이 알아서 준비하고 최종 보고 때만 보여준다면 소규모 과제로 끝날 일이, 중간 보고를 함으로써 초대형 과제로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순간은 고통이요 후회입니다.
질책에 대한 부담감 (=혼날까봐)
터프하고 깐깐한 상사의 경우, '불완전한' 것 자체에 민감한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중간 보고는 최종 보고에 비해서는 비교적 부담감이 덜한 자리여야 하는데, 최종 보고와 동일한 강도로 리뷰를 받는다면 누구든 중간 보고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검토받으러 갔는데 "아니~~~ 누가 이렇게 일을 하래! 나 참 답답해 죽겠네"라며 정신이 빠지도록 한 번 혼나면 그 다음부터는 중간보고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극적인 사람일 수록 상사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중간 보고를 주저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들은 실제적인 것이고, 아쉽게도 제가 답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Case by Case로 이런 난관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사와 편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노력을 평소에 하는 등)
중간 보고는 이처럼 중요하지만, 실행이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중간 보고를 잘 하지 못하는 축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중간 보고를 했을 때 얼마나 일이 쉽게 풀리는 지 경험했던 기억 때문이고, (선천적인지 훈련인지 모르겠으나) 상사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선배들과 동료들 치고 일 못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중간에 초안을 들고 질문하기 위해, 검토받기 위해 오는 후배 사원들을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지시한 일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구나'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반면, 중간 보고를 제때 하지 않으면, 상사는 불안해하고(일이 제대로 되어가는 건지...) 그로 인해 일을 그르쳤을 경우 '쟤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줄 모르는구나'라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마치기 전에 첨언을 하나만 더 하고자 합니다. 중간 보고가 오피셜하게 날짜로 박힌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은 그 중간 보고는 사실상 최종 보고 중 하나로 간주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식적인 최종 보고 날짜가 2주 후이고, 공식적인 중간 보고가 1주 후라면, 1주 후에 하는 보고도 일종의 '최종 보고' 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중간 보고는 대부분 비공식적인 것입니다. 쓰다 만 보고서를 출력해서 상사의 자리로 잠시 들고 간다거나, 식사하러 이동하는 도중 의견을 묻는 것, 의사결정 요청 메일, 메신저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보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상사와 가까워지기 위해 수시로 노력도 해야 하고, 성격(스스로가 내성적이거나 겁이 많다면)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