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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un 07. 2019

Intermission : 신구약 중간 역사

회복기 이후부터 헤롯 대왕까지의 이야기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로 우리는 구약의 역사와 선지자들의 증언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신약으로 바로 넘어가기 전에, 저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 역사를 짧게나마 정리해 보려 합니다(저자는 본서에서 이 기간을 다루지지 않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정경인 말라기와 신약의 복음서 사이에는 400년이라는 큰 간격이 존재합니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복음서를 펼쳤을 때 우리는 구약에서 등장하지 않는 배경들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의 공공연한 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위선자이고 악당들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이 헤롯 왕인데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왜 있는 것일까요? 그는 로마의 총독씩이나 되었으면서 왜 유대인들의 폭동을 두려워했을까요? 로마서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이 두 부류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를 대강이라도 훑어본다면 이런 상황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낯설더라도 용기와 인내심을 가져봅시다.







그리스(헬라) 문화 vs 유대 문화


 포로 귀환 이후, 회복의 시간을 거치며 유대인들은 번영의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혹독했던 재건기의 유다 인구는 7만명 정도였는데 B.C 3세기말에는 12만명으로 증가합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 문화의 위협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를 쳐부순 이후 강력한 그리스 문화가 출현하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그의 업적에 비해 허무하게 요절하고, 그가 정복한 세계는 4명의 장수들이 분할하여 통치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공부한 적이 있지요?) 그 중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유대를 다스리게 되는데 그 기간은 대략 B.C. 332~ B.C. 200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후, 유대는 다른 왕조인 셀류코스 왕조로 편입됩니다.


 셀류코스 왕조는 속국들의 그리스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데,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문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 많은 이들이 세속을 떠나 광야로 나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광야에서 모세 율법의 순수함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에세네파로 불리우는 분파가 그들이었고, 세례요한도 그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다른 이들은 극단적인 저항을 준비했습니다. 칼과 창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광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 문화에 호의적인 입장을 가진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종교이며, 이를 위해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기간에 최초의 그리스어 번역본 성경이 만들어집니다. '70인역'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유대 안에서는 그리스 문명에 동화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고립주의자와, 그리스와 유대 문화를 조화시키려 했던 동화주의자 즉 개혁파가 대립하게 됩니다. 개혁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메넬라우스는 "하나님은 성전에 국한되어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려던 고립주의자들은 "그것이 바알 신앙과 다를 것이 무어냐"며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수호했습니다.


 개혁파들은 치명적인 동맹을 셀류코스 왕조와 맺게되는데, 그 대상이 지난 장에서 언급했던 에피파네스라 자칭한 안티오쿠스 4세였습니다. 그는 유대의 신속한 그리스화를 추진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폐기되었고 성전은 일반 제의소로 격하되었습니다. 신성모독이 성전 안에서 자행되었고 이를 거부하는 백성들은 끔찍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카베오 혁명과 유대의 독립


 안티오쿠스의 유례없는 핍박으로 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의 참혹한 통치 가운데 제사장 마타디아스라는 인물이 신앙을 위한 분노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신상에 먼저 절하는 모범을 보이라"는 안티오쿠스 4세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방 신상에 절하려는 유대인과 왕의 관리를 칼로 죽입니다. 그리고 마타디아스는 율법에 열심을 내는 이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갑니다.


「유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마타디아스」, 구스타브 도레


 마타디아스는 유다, 요나단, 시몬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마카베오'라는 이름으로 셀류코스 왕조에 대항합니다. 그들의 저항 방식은 게릴라전이 될 수 밖에 없었지요. 집요하고 끈질긴 투쟁 끝에 그들은 승리를 쟁취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대 지역에서 쫓겨났고 성전은 다시 여호와께 봉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수전절로 지킵니다. 유대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로마와 재빨리 동맹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쇠락하던 셀류코스 왕조는 유대의 조세를 면제합니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통치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손을 뗀 것이지요. 유대는 440년만에 독립의 날을 맞이했습니다(B.C 142). 이때부터 유대는 '하스몬 왕조'가 다스리게 되고 대제사장인 시몬 마카베오가 초대 통치자가 됩니다. 


 유대는 독립을 얻었지만, 그때까지 겪은 역사는 그들에게 끔찍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혹은 저항하고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핍박이 두려워 신앙을 포기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유대 민족은 그리스 문화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것이지요. 그런 난관을 극복하고 얻은 독립이었기에, 이때부터 유대의 통치 철학은 자연스럽게 율법 중심의 근본주의가 되었습니다. 다시 나라를 잃은 이후에도 성전과 율법에 대해 간섭이 있을 시, 지체없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유대는 통치한다는 것은 정말 민감하고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 땅을 다스리든지 말이지요.  




하스몬 왕조의 타락


 그러나 그들의 눈물겨운 분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칼과 창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통치는 첫 마음을 잃고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시몬 마카베오에 이어 유대를 통치한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순교자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모토 아래 강력한 근본주의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다윗의 통치시대와 같이 '순결하게' 만들기 위해 사마리아를 흔적조차 없애버리고 평민들에게 강제 개종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죽음 뿐이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 1세의 다음 통치자인 얀나이우스는 더욱 잔인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최소한 여호와 신앙의 정신은 갖고 있었지만, 얀나이우스는 그야말로 난폭한 전제군주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비유대인 공동체를 잔멸했고 근본주의 개종 정책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평민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때마침 셀류코스 왕조는 쇠락했고, 로마는 아직 제국이 될 만큼 성장하지는 않은 터라 유대는 이방 민족 개종과 함께 손쉽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얀나이우스가 그리스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를 도입하려 하자, 이에 분개한 이들의 반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유다는 6년간의 내전에 빠지고 5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사망하게 됩니다.


 얀나이우스가 죽은 후, 미망인이 된 살로메가 9년간 유대를 통치합니다. 그리고 그녀도 죽음에 이르게 되자 차남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장남 힐카누스 2세를 몰아내고 왕이 됩니다. 이를 원치 않았던 힐카누스 2세의 부관안티파트로스는 로마를 끌어들이게 되지요. 로마의 폼페이우스는 유대를 점령하고 유대의 짧은 독립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B.C. 63년). 여호와 신앙을 주창했던 하스몬 왕조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사라진 것이지요.   




헤롯 대왕, 그의 유능함과 잔혹함


 로마는 속국인 유대에 왕을 세우는데, 그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은 신기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두매(에돔) 출신으로, 하스몬 왕조에 의해 강제 개종된 이의 후손이었습니다. 역사는 그가 매우 유능한 정치가임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는 잔혹한 폭군이었습니다. 개종된 유대인인 그는 철저한 반유대주의자로서 그리스 로마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헤롯 대왕


 헤롯의 정치적 수완은 그가 로마와의 관계를 항상 우호적으로 유지해 왔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로마의 왕이 되든 그는 권력자에게 붙었습니다. 안토니우스와 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던 헤롯이, 새로운 로마 패권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재빨리 달려가 그의 마음을 얻은 일화는 유명하지요. 


 그는 다윗 왕의 후손들을 증오했습니다. 하스몬 가문은 그의 주요 숙청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몹시 잔인한 왕이었지요. 아마도 이두매인이라는 열등감이 그를 폭군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복음서 초반에 메시야 출생이 예고되자, 베들레헴 일대의 아기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 바로 헤롯 대왕입니다(마태복음 2장). 또한 헤롯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본토에 유입시킴으로써 유대 근본주의, 엄숙주의 영향력을 축소시켰습니다. 헤롯 시대에 국가와 종교는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기 위해 새로운 성전을 건축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제 2성전을 증축한 것이지요. 이를 헤롯 성전이라 부릅니다. 대제사장이 아닌 헤롯은 어차피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는 성전의 외적 규모에 집중하여 건축을 합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을 능가하는 규모를 목표로 공사에 착수합니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된 성전이 바로 이 헤롯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 - 추정도



 이후 로마는 그의 아들 세 명에게 유대를 3등분하여 다스리게 합니다. '분봉왕'이라는 직위는 일종의 영주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1) 먼저 유대, 사마리아, 에돔을 다스렸던 왕은 헤롯 아켈라오 입니다. 그는 폭정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유대인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의 통치에 실망한 로마는 그를 추방시키고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다스리게 됩니다. 그 다섯 번째 총독이 빌라도였습니다.


2)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은 헤롯 안티파스에게 돌아갔습니다. 헤롯 안디바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그는 세례요한을 죽인 왕이자, 예수님을 재판하고 빌라도에게 보낸 이었습니다.


3) 갈릴리 북부를 다스렸던 왕은 헤롯 빌립 1세입니다만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 열심당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활동한 유대인들의 여러 분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복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리새파(Phariaees)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 장에서 소개드린 에스라의 율법 중심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의 순종에 목숨을 걸었으며, 유대교의 전통에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바리새파인들 중에는 율법을 보존하고 기록했던 서기관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위선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바리새인들이 유대 땅에 살면서 율법을 준수하며 스스로를 정결케 한 집단이었다면, 에세네파(Essenes)는 은둔과 세속 분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리새파의 분파인 그들은 광야로 나가 개인 경건과 금욕주의를 실천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에세네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부활 논쟁으로 유명한 사두개파(Sadducess)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솔로몬 시대 사독의 후손들입니다. 사두개파는 오직 모세오경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사두개파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부유한 기득권층이었고 그것을 지키는데만 혈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열심당(Zealots)입니다. 그들은 칼과 창을 갖고 민족 투쟁을 전개하며 메시야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바라던 메시야가 아니었지요. 열심당은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당한 후까지(A.D 73년) 항전합니다.




 





 글을 쓰는 제가 숨이 차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신구약 중간사는 더 자세한 사건들이 많지만 본서의 흐름을 돕기 위해 필요한 흐름들만 정리하다 보니 몹시 압축된 글이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다면, 본편을 쓰는데 참조한 아래 책들을 소개드립니다. 이제 진정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넘어갑시다.


ㆍ「이스라엘 역사」, 존 브라이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ㆍ「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포이에마

ㆍ「통박사 조병호의 신구약 중간사」, 조병호, 통독원



▷ 7.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 메시야 예수(1) 에 이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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