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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May 28. 2019

6. 거룩한 국가공동체와 묵시적 왕국 (3)

하나님 나라의 최종 승리를 바라보는 묵시 문학

※ 표지그림 : 「Daniel’s Vision of the Four Beasts」, engraving from Merian’s Illustrated Bible


 회복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보존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방 문화와, 통혼의 유혹 속에서 자신들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외부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으며 그 거대한 페르시아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알렉산더 제국이 세계를 통일하며 유대인은 또다른 위협과 불확실성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굳건히 붙들며 격려하는 메시지는 또다른 양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묵시 문학'입니다.




묵시문학(Apocalyptic Literature)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조금 어려운 용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묵시'(示)란 무엇일까요? '묵시'는 '계시'(revealation)이라고도 하는데 뜻 그대로 풀이하면 '(감추인 것을) 드러내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맨 마지막 책이 무엇이지요? 맞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잠시 설명하려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대표적인 묵시문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면 다른 성경과는 달리 낯선 표현들이 나오고 어떤 부분은 무섭기도 합니다. 그리고 약간 판타지스러운 환상들도 나옵니다(용과 짐승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렵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단들이 본문들을 악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난해하지만, 당시의 교회 구성원들에게는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배경에서 쓰여졌을까요?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쓰여졌을까요? 세 가지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박해와 유혹으로 인해, 믿음을 지켜내기 힘든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② 죄악과 정치적 권세가 무섭게 날뛰는 현재를 재해석한다 (= 실상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③ 장차 다가올 승리를 묘사한다 (=곧 주께서 강한 권능의 손으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성도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은 "너희가 지금 견디기 힘든 핍박을 받고 있으며, 성도들은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지만 실상 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들은 멸망할 운명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다. 께서 친히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믿음을 지켜낸 순결한 백성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물려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하라!" 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 문학들은 대부분 이와 동일한 주제와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묵시문학은 기존 성경들에 비해 낯설어 보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묵시 역시 예언의 소산이며 구약성경의 전체 방향도 종말론적이기 때문이지요. 정경으로 포함되진 않았지만 에녹서, 바룩서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정경으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니엘서가 있습니다. 대체로 주전 2세기~주후1세기를 묵시 문학의 절정기로 꼽습니다. 특히 회복기의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묵시문학이 성행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레스의 귀환령이 내려졌을 때는 희망으로 가득찼습니다. 회복기 공동체는 자신들이야말로 남은 자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지도한 다윗 왕가의 후손 스룹바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은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그를 짧게 언급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아무도 모릅니다(저자는 그가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지지합니다). 메시야 시대는 열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변함없는 가난한 식민지 민족이었으며, 페르시아 제국은 2백년동안이나 흔들림 없이 이어졌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칠흑과 같은 상황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역설적으로 더욱 큰 하나님의 간섭을 갈망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소망이 표현된 것이 바로 묵시문학인 것입니다. 묵시적 정신은 위대한 신앙의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의 승리는 확실하다는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묵시문학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교만한 노력이 아닌 오직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과 하나님의 메시지 


 묵시문학은 별도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글에서는 다니엘서의 아주 일부만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서의 앞부분은 사건 중심의 이야기라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후반부는 그야말로 계시와 환상의 내용이 대부분이므로 난해하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본문이 많습니다.


(1)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꿈 해석 (다니엘 2장)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어느날 꿈을 꿉니다. 그 꿈이 너무 이상하고도 생생해서 왕은 번민을 거듭한 가운데 주술사들을 부르지만 그들은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분노한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나서서 그 꿈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왕 앞에서 해석합니다. 아래의 그림은 느부갓네살이 꾼 꿈에서 나온 큰 신상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과 다니엘의 해석


 보시다시피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신상은 금으로 만든 머리와 은으로 만든 가슴과 팔, 놋으로 만든 배와 넓적다리, 쇠로 만든 종아리, 쇠와 진흙으로 만든 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금으로 만들어진 머리가 현재 느부갓네살이 통치하고 있는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은, 놋, 쇠, 쇠와 진흙으로 묘사되는 나라들이 뒤이어 일어날 것임을 설명합니다.


 역사적 순서에 근거한다면, 은의 나라는 페르시아이고 놋의 나라는 알렉산더의 헬라(그리스) 제국, 쇠의 나라는 강력한 로마, 그리고 쇠와 진흙은 이후의 작은 나라들이라는 학설이 정론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부분이 실제로 어떤 나라인가는 둘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의 근본 의도가 중요합니다.     


 왕의 뒤를 이어 다른 나라가 일어나지만 왕의 나라만큼 크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놋쇠로 된 세 번째 나라가 온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네 번째 나라는 쇠처럼 강할 것입니다. 쇠가 모든 물건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네 번째 나라도 다른 나라들을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 왕께서 보신 발과 발가락은 쇠와 진흙이 섞여 있는데 이것은 이 나라가 나뉠 것을 말해 줍니다. (다니엘 2:39~41, 쉬운성경)


 위 본문에서 느부갓네살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구절이 무엇일까요? 바로 초반에 있는 '왕의 뒤를 이어 다른 나라가...' 입니다. 영원할 것 처럼 위풍당당한 바벨론이, 실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며 바벨론의 멸망만을 기다리는 포로 이스라엘에게, 바벨론의 멸망은 끝이 아니고 뒤에 다른 나라들이 더 이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바벨론만 멸망한다면...!" 이라는 생각은 헛된 기대이다. 너희는 더 긴 인내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희망을 빼앗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참되고 현실적인 희망을 갖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긴 역사의 여정을 지난 후에야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삶이 하나의 지침을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순결을 지키면서도 이 세상 나라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시적 나라인 바벨론의 평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것이지요.




(2)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들의 환상 (다니엘 7장)

 바벨론 벨사살 왕 첫 해에, 다니엘이 꿈을 꿉니다. 그 꿈은 매우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바다 물결이 매우 높아졌다. 그 때, 커다란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짐승들의 모양은 각기 달랐다.
 첫 번째 짐승은 사자처럼 보였으나 독수리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두 번째 짐승은 마치 곰처럼 생겼다... 이빨 사이에는 갈빗대 세 대가 물려 있었다. 누군가가 그 짐승에게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고 말했다.
 그후에 다른 짐승이 ... 이 짐승은 표범처럼 생겼는데, 등에는 새의 날개 네 개가 나 있었고 머리도 네 개였다. 이 짐승은 다스릴 권세를 받았다.
 그 날 밤 ... 내 앞에 네 번째 짐승이 보였다. 이 짐승은 무섭고 잔인하고 매우 강하게 생겼다. 이 짐승의 이빨은 쇠였는데 그 이빨로 먹이를 으스러뜨려 잡아먹고, 발로는 그 남은 먹이를 짓밟았다. 이 짐승은 전에 본 다른 짐승들과 달랐고 열 개의 뿔이 나 있었다." (다니엘 7:2~7, 쉬운성경)


 다니엘이 꿈 속에서 본 짐승들은 하나같이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 짐승들이 의미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느부갓네살의 꿈과 유사합니다. 사자와 같은 짐승은 바벨론, 곰은 메대-페르시아, 표범은 그리스, 그리고 네 번째 짐승은 추정컨대 로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짐승들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십니다. 다니엘이 직접 보고 있는 그 짐승들의 이미지를 말입니다.


「다니엘의 환상 : 바다로부터 나오는 짐승들」, Luigi Sabatelli


 이 환상이 전달하는 느낌은 어떤가요? "공포스럽다"는 것이 가장 정직한 답일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나라들은 하나같이 흉악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호의적인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들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주눅들게 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앞으로 다가올 현실을 직시하기 원하셨습니다. 역사는 본래 잔인과 공포로 가득합니다. 백성들은 헛된 희망이나 망상이 아닌, 차가운 현실을 인식한채 믿음의 싸움을 준비해야 합니다.   



(3)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 (다니엘 8장)

 그 다음으로 다니엘이 본 것은 벨사살 왕 3년째였습니다. 이것도 전체적인 내용은 유사하게 흘러갑니다.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숫양을, 알렉산더 제국을 의미하는 숫염소가 들이받아 죽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제가 요절하는 바람에 제국은 4개로 나뉩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뿔에서 나온 작은 뿔이 심히 커지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 숫염소는 점점 더 강해지더니 그 때, 그의 큰 뿔이 부러지고 대신 뚜렷하게 잘 보이는 뿔 넷이 사방을 향해 자라났다. 그러다가 그 중 하나에서 다시 작은 뿔 하나가 자라났다. 그 뿔은 남쪽과 동쪽과 아름다운 유다 땅을 향해 크게 뻗어 나갔다. (다니엘 8:8~9, 쉬운성경)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


 그 작은 뿔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예배를 폐하고 성소를 헐어버립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대대적인 핍박과 탄압이 자행되는 것이지요.


 그 작은 뿔이 하늘에 닿을 만큼 자라나더니 하늘 군사들 중에서 몇 명을 땅에 떨어뜨려 짓밟았다. 심지어 그 뿔이 하늘의 군대 사령관에게 대항할 정도까지 되어서, 주께 날마다 드리던 제사마저 못하게 하고 주께 예배 드리던 전마저 헐어버렸다.
 그 뿔 때문에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이 일어났고, 백성들은 날마다 드리던 제사를 멈추었으며, 진리는 땅에 내던져졌다. 그 뿔은 하는 일마다 다 성공했다. (다니엘 8:10~12, 쉬운성경)


 이 작은 뿔이 역사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는 에피파네스라고 자칭했던 안티오쿠스 4세입니다. 나뉘어진 헬라 4개의 나라 중 셀류코스의 지배자였던 그는 유대 땅을 자신의 영토에 편입시키면서 광적인 헬라화(그리스화) 정책을 추진합니다. 사실 헬라화 정책 자체는 유대인들에게도 큰 반감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에피파네스 신(올림피아 제우스 신의 가시적 화신)으로 추앙하고 경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안티오쿠스 4세


 처음에 유화정책으로 나아갔던 안티오쿠스 4세도 유대인들의 저항을 확인하자 강경한 억압정책을 가합니다. B.C 168년, 그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제단 위에 돼지고기를 제물로 드림으로써 성전을 더럽히고 유대교의 예배를 중지시켰습니다. 또한 율법의 사본들을 폐기했고 안식일도 지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할례를 시행하거나 성경을 소지하는 것은 중대 범죄로 간주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유대인들에게 '순교'라는 단어가 이 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안티오쿠스의 박해는 유대인들이 경험한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히는 핍박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폭군의 칼날 속에서 유대인들은 탄식하며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러한 장래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한 거룩한 자가 다른 천사에게 물었다. "이 환상 속의 일들이 언제까지 계속되겠소? 날마다 드리던 제사가 금지되고 하나님께 반역하여 멸망을 부르고 성전을 헐고 하늘 군사를 짓밟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겠소?" (다니엘 8: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절망만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니, 지금까지의 절망을 보여주신 이유는 더욱 큰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그들에게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지상 권세들을 파괴해버리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다니엘 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에 대해 듣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그 꿈에 나타난 커다란 신상과 각 부분들은 바벨론 이후에 일어날 제국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꿈은, 신상이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왕이 신상을 보고 있는데, 아무도 떠내지 않은 돌이 어디선가 날아와 쇠와 진흙으로 된 신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쇠와 은과 금도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서 타작 마당의 겨처럼 작아지더니 바람에 날려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상을 친 돌은 매우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덮었습니다. (다니엘 2:34~35, 쉬운성경)


 신상을 부숴뜨린 물체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 의미까지 해석해 줍니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백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나라가 다른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입니다.
 아무도 떠내지 않은 돌이 산에서 날아와 쇠와 놋쇠와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수는 것을 보셨는데, 이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일을 왕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꿈은 확실하며 그 꿈 풀이도 틀림없습니다 (다니엘 2:44~45, 쉬운성경)


 그 돌의 정체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돌은 아무도 떠내지 않았으며(즉, 사람의 손이 개입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신상의 부분들보다 강력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런 회복기가 지속되고 있지만, 그리고 그 이후도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 세월이 예고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확실하며 그 승리는 모든 지상의 권세들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확신을 주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참 왕은 누구인가?


 느부갓네살 왕은 이후에 다시 꿈을 꾸게 되는데, 그것은 세상 권세를 가진 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다니엘이 이를 상세하게 해석해 줍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고를 무시했고,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스스로의 업적에 심취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바빌로니아는 위대하지 않은가? 내가 내 힘과 권력으로 세웠지 않은가? 내 영광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닌가?' (다니엘 4:30, 쉬운성경)


 그의 교만한 독백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가 꾼 꿈 대로 미쳐버리게 되어 7년동안 짐승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살게 됩니다. 그가 이룩한 바벨론은 실로 거대한 제국이었지만, 진짜 사람을 다스리는 이는 그의 위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7년 동안 짐승과 같이 살면서 그것을 배운 것이지요.


미쳐버린 느부갓네살 2세



 느부갓네살 이후, 벨사살 왕은 더욱 교만하여 예루살렘에서 빼앗은 성전 기물(금잔, 은잔)를 가지고 연회를 즐겼습니다. 이에 더하여 우상을 비롯한 잡신들을 찬양했습니다. 그의 교만이 극에 달하던 순간 사람의 손가락이 갑자기 나타나 벽에 글씨를 남깁니다. 그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 메네, 메네(너의 나라는 끝장났다) 

- 데겔(너는 부적합한 자다)

- 바르신(너의 나라를 다른 두 나라가 나눠가질 것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더욱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것은 그가 선왕 느부갓네살이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들어왔고 알면서도 오만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그는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은 메대에 넘어가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의 자손인 벨사살 왕이시여, 왕께서는 이 모든 일을 알면서도 마음을 낮추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 5:22, 쉬운성경)


「벽에 쓰인 글씨를 보고 두려워하는 벨사살 왕」, 램브란트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주장하신다


 다니엘이 꾼 꿈 중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마 7장에서 보았던 짐승들의 환상과, 8장에서 본 숫염소의 뿔 환상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숫염소의 뿔에서 다시 나온 작은 뿔은,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하늘의 군대 사령관을 대항할 정도로 위력있었고 예배를 중지시켰으며 성전을 헐어버렸습니다(8:9~12). 역사적으로 이 작은 뿔은, 장차 유대 민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하나님을 마음껏 욕되게 했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상징합니다.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은, 장미빛 미래는 커녕 처절한 시련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놀랍고 공포스러운 감정으로 환상 가운데 있던 다니엘은 두 천사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그 때, 두 천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한 거룩한 자가 다른 천사에게 물었다. "이 환상 속의 일들이 언제까지 계속되겠소? 날마다 드리던 제사가 금지되고 하나님께 반역하여 멸망을 부르고 성전을 헐고 하늘 군사를 짓밟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겠소?"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 일은 밤낮으로 이천삼백 일이 지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성소가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8:13~14, 쉬운성경)


 '이천삼백 일'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신학적 의견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당할 시련과 고난이 결코 짧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간은 분명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장차 맞이하게 될 비극의 시간이 믿음의 준비 없이 맞닥뜨리기에 버거울 것임을, 그러나 그 칠흑같은 터널에 반드시 끝이 있음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니엘의 기록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여러 해 전에 미리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견딜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악마가 거침없이 날뛰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제가 분명히 있으며, 그 시련을 감당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붙들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 공동체와 묵시


 결국 묵시 문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견고한 믿음과 율법에의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묵시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이 헛된 희망("포로 생활이 끝났으니 이제 모든 게 잘 풀릴거야")에 속지 않고 더욱 가혹하게 다가올 미래를 직시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비극 속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세상을 통치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율법을 굳게 지켜라! 유대교를 확실하게 고수하라! 너희의 하나님을 견고하게 의지하라! 하나님은 존재하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인간들의 하찮은 나라들을 능가하느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이 땅의 악한 세력들을 멸망시키시기 위해 신실한 백성들 사이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간섭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서기관 에스라는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순종을 가르치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거대 제국 바벨론, 페르시아 땅에서 수많은 값지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묵시문학을 통해 수많은 이상들을 미리 보여주신 것도 이후 백성들이 '율법에 대한 절대 충성'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율법 공동체 운동과 묵시 문학은 동일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상황이 주어져 있습니다. 아래는 SNS 등에서 소개된 바 있는 유명한 만평 중 일부입니다. 시간을 내어 유심히 쳐다봅시다.

 인생의 출발조건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지만 그것을 막을 힘은 미약한 현실,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주종관계 ... 돈, 권력, 불의, 악한 문화.... 우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이같은 세상의 맹위 속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도 '세상의 위력'을 온 몸으로 실감했던 적이 있나요? 그것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같은 핍박이 아니라도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쉽지 않은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신실하게 살아보려고 하면 갖은 유혹들이 마음을 뒤흔들고, 조금만 순종의 길로 한 발 디디려 하면 수많은 불이익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아마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자 결심한 횟수만큼 좌절을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얄팍한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지막을 살아가는 이 때에 허다한 사람들이 배교할 것이며 십자가를 버리고 넓은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마지막 날에 많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으며, 나쁜 말을 일삼으며, 절제하지도 못하고 잔인하며, 선한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를 배반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며, 교만하고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 쉬운성경)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지키고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에서 망하는 것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그분은 살아계시며 불꽃같은 눈동자로 당신의 백성들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를 따름으로써 맞이하게 되는 고통의 시간조차 하나님의 손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위풍당당한 제국과 같은 세상의 구조물들은 사람의 손이 아닌 뜨인돌에 의해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에스라가 몸부림쳤던 율법에 대한 순종은 지금 우리에게도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라, 충성을 다하라, 너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라고....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개역한글)




*이번 글에는 <다니엘 강해-BST시리즈>,데일 랄프 데이비스, IVP 서적을 참고하였습니다. 


▷ Intermission : 신구약 중간 역사 에 이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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