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애매한 재능의 저주
34살, 이제 나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내가 이 나이를 맞이할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리니 어쩐지 낯설다.
2025년은 내게 큰 변화의 해다.
갑작스럽게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것.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 친구들이 올해 아이를 낳는다는 소식이 줄줄이 들려온다.
무려 네 명의 친구가 첫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는 친구도 두 명이나 있다.
물론 결혼을 한 친구도, 아직 하지 않은 친구도 있지만 말이다.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내가 아직도 철이 없는 망나니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이 들어 공부하겠다고 다시 학교에 가는 내 모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결혼은 지금 당장 생각할 처지가 아니지만, 괜히 남들이 걸어가는 길을 나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보통의 삶’이란 게 사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이 말하는 보통에 끼어들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 내리는 결론은,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다.
재능도 없으면서 뭘 위해 이렇게 공부를 하는 걸까? 친구들은 사람을 키워내는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데, 나는 내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힌다.
비전공자인 내가 작은 작품을 만들어 대학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친구들이 하나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겁이 난다. 나 혼자 죽을까봐 그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제일 크려나. 이 생각은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그렇다는 건 굳이 생각을 안해도 되는 거긴 한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나중에 고독사하지 않으려면 우리 같은 동네에 살자”는 우스갯소리를 던지곤 한다. 물론 나는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인연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인연을 못 만난 상황이 때로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실 내 생각이 나를 제일 불안하게 하는 거긴 하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그런 놈이다.
이렇게 인정하는 동안에도 나의 불안이들이 요동친다. 이건 다 돈 때문이야. 너의 애매한 재능으로 돈을 많이 못벌어서 그런거자나! 이러면서 나에게 더욱 더 뭔가를 재촉한다. 돈이라도 넉넉하면 마음이라도 넉넉할텐데라고. 지금 마음이 안넉넉한데 돈있다고 넉넉해지겠냐고.
근데 ‘예술은 배가 고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옛날에는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 막상 내 일이 되니 쉽지 않은거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시작했던 게 삶이 되니 여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외주도 하고, 지원사업도 받아 뭔가 하고 있는데 확장이 안되는 거지.
재능 있어보이는 남들을 비교하면서 나를 또 채찍질한다.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 잘되고 있으면, 내 애매한 재능을 탓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면서도 가끔 이걸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애매한 재능의 저주에 걸린 주인공?" 그런 고민과 잡생각 속에서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다 다시 이런 감정소모도 귀찮고 힘든 나이가 되었다. 그래 나 놓아버리자. 이런 생각도 젊을 때나 가능하지. 나의 불안이들아 나도 이제 너한테 힘쓸 애너지가 없다고 항복 선언을 한다.
그래. 남들이 말하든 내가 말하든 애매한 재능이면 어떤가. 그리고 결혼을 못해서 나혼자 늙어 죽으면 또 어떤가. 일단 지금을 살아내야 내일이 있고 미래가 거니까.
"뭐든 하면 어디로든 간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잖아. 일단 버티자.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이며 하루를 버텨본다. 나는 버티는 것도 재능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버티는 걸 잘하기도 한다. 독한 면모가 있다. 나름 지구력도 있고, 왕따를 당한 회사에서 나의 버티는 능력? 덕분에 나를 고생 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버티는 걸 잘하는 거 아닌가.
사실 나는 알고 있따. 애매한 재능 덕분에 거기서 오는 평범함으로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이 있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도 있다는 걸을.
결국, 모든 것은 뒤집어 보면 장점이 되고,
단점은 또 다른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
나의 불안이들아. 너무 나를 재촉하지 말자.
그리고 기죽지 말자.
지금을 잘 살아내면 그게 나의 삶이다.
버텨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