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인 줄 몰랐던 이별

1985

by 브로카

어른들이 트럭 화물칸에 큰 짐들을 옮겨 실고 있다.

큰 짐이 화물칸에 내려질 때마다 트럭은 들썩거렸다.

얼굴이 익은 동네 어른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큰 짐들을 힘 모아 옮겨주었다.

문짝을 떼어내어 뻥 뚫린 창으로 짐을 꺼내었다.


짐이 어느 정도 차로 다 옮겨졌을 무렵

엄마는 내가 외숙모라 부르던 친척 아주머니와

한참을 부둥켜안고 우셨다.

약주 좋아하시던 외삼촌과 형, 누나가 생각난다.

네 분 다 모두 나를 참 귀여워해 주셨다.


나는 트럭의 운전석 옆 중앙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타보는 트럭 앞자리다.


우리 집에 지금 ‘무슨 사정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 국민학교를 갓 입학한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처음 타본 트럭 앞자리가 너무나 신나,

핸들과 기어봉을 만져보며 눈이 반짝거렸다.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 페달도 밟아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시동도 꺼져있었고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꽉 잠겨 있어,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처음 밟을 땐 오줌이 지릴 뻔할 정도로

온몸이 찌릿한 느낌이 났다.


어른들은 한참을 인사를 나누신다.

엄만 자꾸 눈가가 붉어지신다.

지난주쯤에 엄마가 학교를 오셨고,

중년의 여선생님이셨던 내 선생님이

나를 품에 꼭 안아주셨다.


“이제 낯익고 정들려고 하는데 서운하게 가는구나.”

“그냥 선생님하고 대구서 살까?? ㅎㅎㅎㅎ

“충무 가서도 잘 살아래이.”


“네......”


말씀 후에도 한 1분은 꼭 안고 좌우 발에 무게를 옮기며 뒤뚱뒤뚱 꼬옥 안아주셨다.

아직 성함도 뚜렷이 기억난다. 어렴풋한 얼굴과 남색 투피스를 입고 계신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아련히 남아있다.


나에게 이삿날 도착의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차 탄 것이 피곤했을 테고 늦게 도착하기도 했을 테니 적당히 한자리 만들어서 눕혔나 보다...


내가 태어난 고향 대구에서

정말 내 고향 통영으로 이사를 갔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싫은 내 고향 통영.

꼭 안아주시던 선생님, 엄마를 안고 우셨던 외숙모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 카레라이스 먹어봤냐며 그릇째 집 밖에 들고 나와 자랑하던 개인택시 운전수 아들 성엽이, 주인집 호구, 그리고 이웃 어른들...

추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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