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의 고리를 끊고 자연으로 돌아간 니느웨의 요나
설국열차는 프랑스에서 발간된 만화 Le Transperceneige를 원작으로 하는, 봉준호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이다. 그런데 원작을 살펴보면 '빙하기가 찾아온 세상을 떠도는 열차'의 세계관을 제외하고는 스토리상 닮은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돈이 남아 돌아서 판권을 사온 것이 아니라면 봉준호 감독은 '열차'에 집착을 했다는 뜻이다. 그가 생각한 노아의 방주는 열차여야만 했다. 그는 왜 열차를 선택했을까?
열차는 '혁명'을 주제로 하는 이 영화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직선으로 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 영화의 스토리는 옆으로 빠질 곳이 없다. 꼬리칸부터 머리칸까지 길이 하나밖에 없고, 혁명은 예측 가능한 순서대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하나의 특성은 열차가 '순환'한다는 것. 열차의 길이는 직선으로 한계가 존재하지만 열차 자체는 지구를 돌며 순환한다. 이 특징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결말이 어렴풋이 예측이 되기도 한다.
열차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뉜다. 초밥과 스테이크를 먹는 머리칸 사람들과, 양갱을 먹는 꼬리칸 사람들. 꼬리칸 사람들은 머리칸 사람들이 부(물과 음식)와 권력(총알)을 쥐고 베푸는 자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머리칸 사람들은 필요할 때 재능이 있는 꼬리칸 사람을 데려가거나(바이올리니스트) 아이들을 빼앗기도 한다. 꼬리칸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폭발하면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질서'라고 일장 연설을 한다.
그런데 반동분자에게 내리는 형벌이 의미심장하다. 팔을 얼리고 부수는 그로테스크한 형벌. 단순히 설국의 혹한을 표현하기 위해 쓴 장치일수도 있겠지만, 이 고문이 일제시대에 마루타(丸太: 통나무)부대라 불리는 731부대에서 실제 자행한 기록이 있는 고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 영화에 제국주의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열차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을 확장 해보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역사와 겹쳐볼 수 있다. 윌포드(Willford: 대량생산의 시발점 포드)는 산업혁명 (엔진)을 개발했고, 이 과정에서 아동 노동과 착취가 이루어졌다. 극의 후반부에 나오는 커티스의 독백에서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안도할 새도 없이 윌포드와 머리칸 사람들이 식량과 모든 재산을 빼앗아갔고, 지옥에서 살아남은 후에야 양갱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그 후로 쭉 양갱을 먹으며 살고 있다'라는 말로 미루어보아 산업혁명에 잇따른 제국주의와 식민지/노예 착취를 표현한 듯 보인다. 그뿐인가. 머리칸의 아이들에게는 꼬리칸 사람들이 가난하고 지저분한 이유가 그들이 게을러서라고 교육받는다. 사실은 제국주의 시대에 다 털려서 출발점 자체가 다른 것을.
열차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경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질서를 종용하는 철의 여인, 어딘가 모르게 마가렛 대처를 연상시키는 메이슨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혁명을 부추키는 머리칸, 전쟁으로 조절하는 인구 수와 '열차 생태계', 터널(불황) 앞에 쓰러지는 꼬리칸 사람들. 봉준호 감독의 상상력은 대담했고,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SF영화에 그의 생각을 담아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명작인가? 아쉽게도, 대단히 흥미롭고 상당히 잘 만든 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명작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했지만, 친절하지 않았고 설득력이 부족해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설국열차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 많이 짤렸다는 것이다. 스토리에 탄탄함을 더해줄 기초공사, 캐릭터 빌딩이 너무 부실했다. 메인 디시라고 할 수 있는 커티스, 윌포드, 길리엄의 이야기는 줄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독특한 캐릭터였던 그레이(감독 피셜 길리엄의 연인)나 남궁민수의 이야기가 모두 잘려버렸다. 7인의 반란의 리더였던 에스키모가 남궁민수의 아내였으며, 그녀에게 눈의 결정 상태로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 관객은 대체 눈 결정을 응시하는 남궁민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극의 흐름상' 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변도 믿고싶다. 정말 관객들에게 열린 결말을 선물하기 위해 자신이 방향을 정해버리는 것을 최대한 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말을 열기 위해서 캐릭터 빌딩을 포기한 것은 너무 아쉬운 선택 아닐까. 그것보다는 프로덕션 과정이나 예산에 문제가 있어 재촬영 등 작품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한국 관객도 900만명을 넘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인터넷에는 온갖 해석들이 올라왔으며 (설국열차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후속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정도 맞아들어가는 놀라운 상상력) 수십개의 패러디가 만들어졌으며 영화의 특급 캐스팅(!)과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봉테일'로 칭송받는 그의 작품이라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아, 물론 '봉준호 감독'을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대단한 감독이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 수 있을 만큼 멋진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니까, 감독님께는 조금 더 많은 것을 기대해 보고 싶다. 과연, 그는 앞으로 기생충이라는, 자신이 세운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