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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0. 2019

[공동경비구역 JSA] 너무 쉽게 깨져버린 믿음의 고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박찬욱 감독이 확인한 불신의 장벽

*이 리뷰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알고 봐도 좋아요.


29살의 이영애는 미친듯이 빛난다.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단아하고 아름답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을 찍을 당시의 이영애는 말 그대로 자체발광. 이영애의 (배우로서의) 첫 출세작을 본다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저기... 다 말씀 드릴테니까 끝나고 커피 한잔 하실래요?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이영애가 연기하는 ‘소피 장’은 한국계 스위스 인으로, 제네바에서 나고 자랐다. 굳이 ‘한국계 여성’인 그녀가 수사관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녀가 약간은 부족한 영어와 완벽한 한국말을 한다는 것이 아주 조금 몰입을 방해했지만, 29살의 이영애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 이정도 흠은 넘어가주자.


제가 독어학과라서 영어 발음이 좀 약해요.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가 시작하고 곧 등장하는 ‘보타’장군은 폴리네시아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라고 한다. ‘소피 장’이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이상하게 왼쪽 책장에 ‘폴리네시아’라고 써져있는 책에 초점이 가 맞는다. 한번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두번이면 분명히 감독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다. 폴리네시아가 대체 한반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답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다. 남북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곳에 부임한 ‘문외한’ 보타 장군은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소피 장은 이 웃기는 상황에서 ‘당신은 안락의자 인류학자군요.’ (연구를 하는데 왜 책상머리에 앉아있냐)라고 조심스럽게 엿을 먹이지만 보타 장군은 애매한 소피의 공격에 분노하는 대신 조사관인 그녀에게 조언을 준다.


“‘누가’가 아니라 ‘왜 쐈는지’를 밝혀라, 하지만 결과보다는 절차가 중요하다.”

“자네의 궁극적 목표는 남북한 어느 쪽도 자극하지 않는 완벽한 중립성이야.”


그런 보타 장군에게 일개 소령인 소피는 “그럼 제가 할 일은 (아무도 자극하지 않도록)군사 분계선 위에 서서 ‘왜 쐈죠?’라고 묻는 것이군요”라고 비아냥댄다.


그러니까 중립국의 입장은 ‘진실에는 아무도 관심 없으니까 적당히 잘 묻어서 문제 안생기게 해라’ 라는 거다. 군대 용어로 ‘짬시켜라.’ 하지만 소피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녀는 허수아비가 아닌 진짜 수사관으로서 이 곳에 왔으니까.






소피는 사건을 면밀히 조사한다. 피해자의 총상, 발견된 탄환의 갯수, 수혁의 장전 습관까지 확인하고 이 사건은 양쪽 어느 주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중립국과 국군, 북한군은 진실에 아무런 관심이 없겠지만 관객인 우리는 그날의 진실이 너무나 궁금하다.


감독은 양측의 주장을 모두 무너뜨린 뒤 우진과 경필, 수혁이 우연히 조우하고 대화를 나눈 장면을 보여준다. 수혁은 지뢰를 밟아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고, 이를 우진과 경필이 발견하고 ‘살려달라’는 수혁의 말에 경필은 목숨을 걸고 지뢰를 해체하여 수혁에게 선물한다.


가까이 오지 말라 그랬지 누가 그냥 가래!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적’이라고 생각했던,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에게 받은 도움. 그 일을 계기로 수혁은 생명의 은인인 남경필 중사를 ‘형’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적’이라는 것을 잊고 조금씩 우정을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감독은 개인과 개인은 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진짜 내려오려고 그랬어요?” 라는 질문에 “미군이 폭격한다는데 그럼 가만히 있냐?”라고 대답하고, “그러니까 핵이랑 미사일을 그만 만들라” 라는 말에는 “그걸 내가 만들었냐”라고 한다. 윗대가리들이 싸우는데 장기말인 그들은 불복종을 선택할 수 없다. 싸우라면 싸우는 거고, 이것을 거부하면 ‘반역자’가 된다.


수혁은 경필을 굳게 믿는다. 경필은 곤경에 빠진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고, 지뢰 해체라는 것은 실수하면 본인의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적인 수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희생을 보여준 경필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진은 조금 못 미덥긴 하지만 ‘지뢰 사건’을 함께 경험한 사람이다. 이 세 사람만 존재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남북한의 감격스러운 포옹 장면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하지만 수혁이 성식을 북한 초소에 데리고 가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불안감이 추가된다. 성식은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을 주저했고, 경필이나 우진과 ‘굳은 믿음’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부족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친해진 적군일 뿐. 여기에 적대감을 가진 진짜 적, 최만수 상위가 등장한다. 믿음은 그 고리가 약한 순서대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성식이 가장 먼저 무너졌고, 우진이 무너지고, 수혁마저 두려움에 굴복했다.


최만수 상위의 등장으로 너무도 쉽게 깨져버린 믿음의 고리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보수와 진보도, 노인과 청년도, 남성과 여성도 집단을 개인으로 인식하며 배척하는 ‘혐오사회’가 되어가는 실정이다. 침착하게, 총구를 내리고 절대 서로를 향해 총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자꾸 누군가가 총질을 해댄다. 내 이익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건만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피해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의 이익집단에 힘을 보태고 적대의 골이 깊어진다.


남경필 중사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는 수혁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가장 먼저 남북 사이를 조율 했으며, 총격으로 자신과 함께 하던 부하(우진)가 죽었는데도 수혁과 성식을 감싼다. 뺨을 맞으면 돌려주는 것이 당연 할진데, 그는 ‘내가 수혁의 상황에 놓였다면 내가 먼저 쏘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수혁을 이해한다.


사진으로만 남은, 그들의 슬픈 비극  출처: 공동경비구역 JSA


이 영화는 역사의 슬픈 현실을 짚어낸 한 편의 비극이다. '믿음'은 집단이 커질 수록 희석되고 여기에 이해단체가 끼어들면 개인의 감정과 믿음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시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민 그들 앞에서 총구를 먼저 내릴 수 있을까. 집단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에 세뇌 당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을까.


*노랫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최만수 상위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 것은 ‘치직’하는 무전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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