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더 어울리는, 박찬욱 감독의 불후의 명작
이 영화는 감독의 전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과는 다르게 연출과 음악, 편집을 굉장히 화려하게 사용했다. 순수하게 편집과 스토리의 힘으로만 승부를 걸어보려 했던 전작의 흥행이 신통치 않아서 사용한 ‘극약처방’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감독의 시도는 매우 성공했다. ‘친절한 금자 씨’도, ‘아가씨’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도 박찬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올드보이다. 그도 올드보이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고 싶겠지만 올드보이는 그 조차 넘기 힘든 산인 것. 박찬욱 감독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작품 중 '박쥐'가 가장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영화로 들어가 보자. 건물 옥상에서 위태위태한 남자의 넥타이를 쥐고 있는 오대수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별 의미는 없지만 눈길을 확 잡아끈다. 박찬욱 감독이 몰입을 위해 친절히 드라마틱한 장면을 삽입해 준 것.
약간의 배경 설정 이후 오대수는 독방에 감금된다. 절망으로 가득 찼던 첫 3년이 지나고 오대수에게 희망이 주어진다. 잘못 배달된 젓가락 한 개. 절대 우연일 리 없다. 이우진은 미도가 아저씨와 함께 있다고 하자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이라며 농담을 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다. 이우진은 오대수가 15년 동안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희망을 던져준 것. 말하자면, 이우진 판 ‘시지푸스의 형벌’이다. (cctv로 24시간 방을 볼 수 있는 철웅이 오대수를 내버려 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이우진이 바라던 대로, 복수에 대한 열망이 그를 지탱한다. 그리고 영화는 느린 현악기가 지배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극적이고 빠른 템포의 음악,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TV장면으로 빨리 감기를 누른다.
그가 이제 탈출을 거의 다 준비해갈 때쯤, 대수는 이유도 모른 채 풀려난다.
그리고 이름 모를, 강아지를 안고 있는 오광록을 만난다. 오광록은 여기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제가요,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요,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대수는 자신의 말이 끝난 뒤 남자의 말을 끊고 떠나버리고 남자는 투신자살한다. 그의 사정이 어떤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우진과 대수의 첫 통화. 우진은 전화를 걸어 대수에게 ‘내가 누굴 거 같냐’라고 묻는다. 대수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모든 이름을 대며 우진을 윽박지르지만 우진은 담담하다. 여기서 이 영화의 모티브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대수는 자신이 복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대상은 자신을 ’ 15년 동안 가둘 정도로’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대수는 상대에게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대수는 자신이 우진에게 저지른 죄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마침내 깨달은 후에도 우진에게 사죄하는 대신, 자신이 게임에 이겼으니 약속대로 죽으라고 말한다. ‘기억을 지워놓고 찾으라는 너는 참 비겁하다’며.
그런 대수에게 우진이 말한다.
‘당신이 그날 일을 기억 못 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말이야, 그냥 잊어버린 거야. 왜? 남의 일이니까.’
그래, 그게 지금까지 대수의 태도였다. 타인을 돌보지 않고, ‘오늘만 대충 수습하는’ 사내. 그는 자신의 과거까지도 수습할 수 있어야 했다. 우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수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이 겪었던 것을 대수 또한 고스란히 겪을 수 있도록 최고의 복수를 준비한 것이다.
우진은 미도에게 대수의 비밀을 알리지 않는다. 대수를 죽일 수 있음에도 그를 죽이지 않는다. 그는 이제 복수를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대수는 지금부터 사는 것이 더 끔찍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수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모르는 채 살아가기를 택한다. 그리고 최면술사에게 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요,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최면술사는 대수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최면술사가 떠난 뒤 미도를 안는 대수의 표정은 웃는 듯 우는 듯 애매하다.
최면술사는 과연 대수의 기억을 지워줬을까.
아니면 대수가 투신한 남자를 대하듯, 내버려 뒀을까.
영화는 대수의 복수를 그리는 듯했지만, 사실 우진의 복수를 담았다. 우진에게 있어 15년의 감금은 그저 복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대수의 가벼운 입 때문이었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가벼운 입방정은 헛소문으로 퍼져나가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도 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아니,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말을 옮기면 안 되는 것이다. 올드보이는 우리에게 ‘당신은 그 가벼운 입으로 타인을 해한 적 없었는지’를 묻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때보다 ‘말이 더 많은’ 지금에 어울리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25살, 그녀가 견뎌냈던 모든 삶의 무게에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