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럽게 내린 한줄기의 빛, 구원은 공감으로부터
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솔직히 조금은 부럽다. 절대자의 존재를 믿는 것, 내 인생의 의미를 그가 알고 있다는 것, 그가 나를 인도할 것이고 내가 세상에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안수집사님이신 아버지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나였기에, 교회가 줄 수 있는 그 알 수 없는 뜨거움은 잘 알고 있다. 여름 성경캠프의 통성기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내가 지나쳐온 감사할 일들에 대한 환기, 그리고 얕게 깔리는 성가대의 목소리가 합쳐졌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오열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뭔가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뭉클함은 그때뿐이었다. 신과 종교는 항상 내게 의문이었으니까. 어릴 적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을 뒤적거리던 내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너의 죄는 사하여졌다.'라는 말이었다.
낄낄대며 종교를 비웃었다. 아니, 그럼 나쁜 짓 해도 괜찮겠네. 어차피 죽기 전에 믿씁니다, 한번 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신이 뭐길래, 피해자의 불타는 증오를 무시하고 멋대로 용서해 버리는가. 나는 그렇게 종교를 떠났다.
머리가 조금 더 커서 세상을 둘러볼 때쯤, 용서를 통해 이르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바로 이 곳, 우리가 사는 세상이구나.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면 내 마음이 지옥으로 변하는구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받아 나의 지옥 같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거라는 뜻이겠구나. 아니, 하지만 이게 용서의 진의라면 신은 우리에게 '용서를 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지 그가 직접 용서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신의 용서를 구해 멋대로 마음이 편안해지면 안 된다.
성경이 오독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남편과 사별한 신애가 아이와 함께 남편의 고향이었던 밀양으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이곳에서 신애는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아들과 둘이 살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돈을 노린 납치범이 그녀의 마지막 남은 가족을 살해해 버린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일어난 일을 실감조차 할 수 없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녀를 비난하던 시댁 식구를 뒤로 하고, TV를 보고 피아노 레슨을 나가며 일상을 이어나간다. 충격으로 신애의 사고가 정지되어 버렸다. 눈앞의 현실에 반응하는 대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루틴을 그대로 따라간다. 생각보다는 관성이 그녀를 움직인다. <데몰리션>의 제이크 질렌할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너무 섣불리 그 마음을 다 안다고, 하나님을 믿으면 그게 어떤 고통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고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하면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진 이들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니까. 하지만 문제는 교인들이 절대자에 기대어 너무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자조차 인간의 마음은 어찌하지 못한다. 그가 준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그 자유의지를 꺾으면 종교는 뿌리부터 무너져 내린다. 그런 면에서 종교인들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역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교인들이고 그들은 해결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도움을 주었어야 한다. 신애의 말을 듣고, 같이 아파하고 인간의 해결에 대해서 말했어야 한다.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제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분명히 거부했고, 그런 기적은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늪에 빠진 사람에게 말씀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신애는 적극적인 약사의 전도를 두 번이나 밀어냈다. 그러다, 갑자기 교회 현수막을 보고 가슴을 부여잡는다. 신애는 홀린 듯 교회에 이끌리고, 짐승 같은 울음을 내뱉어 냈다. 그렇게 그녀는 슬픔을 이겨낸 듯 보였다. 아니, 이겨냈을까?
신애는 살인범을 용서하러 갔지만 살인범은 너무 편안해 보인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으라 넉넉한 마음으로 말해보지만 살인범은 오히려 '신애 씨에게도 하나님이 찾아갔다니 너무 기쁘다' 라며, 자신이 신을 받아들이고 용서받았음을 알린다. 아니,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그를 용서하고 전도하기 위해 간 것이지만, 나에게 용서받지 않은 그가 이미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면 안 된다. 그가 이미 용서받았다면 나의 용기는, 나의 결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도소에서 나오는 길, 뭣도 모르는 종찬과 권사, 전도사들은 '살인범이 벌써 하나님을 받아들여 편안해 보였다. 역시 하나님의 은총은 대단한 것 같다'라고 종알거리지만 이들 중 신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목사까지도 신애가 범죄자를 용서하지 못한 이유가,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 게 아닌데.
성경에,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예수에게 묻는다. 가이사(카이사르)가 우리에게 세금을 내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가 대답하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라고 한다. 용서도 그렇다. 하나님에게 구하는 용서는 하나님에게, 가이사(인간)에게 구하는 용서는 가이사에게 구해야 한다. 인간에게 지은 죄를 하나님에게 말한다면 세상에 정의는 사라진다. 범죄자는 쥐어짜는 마음으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정말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 절박하게 용서를 구했듯이.
신애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믿었다. 마음으로 용서했다고,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모를 도덕적 우월감에 종찬에게 '믿음도 없으면서 교회는 왜 나오느냐' 고 핀잔도 줬다. 그랬던 신애가 이제는 종교 자체에 대한 회의를 보인다. 교회와 교인들과 하나님에게 미움받을 죄를 지으며, 이래도 나를 용서할 거냐 소리친다.
시어머니도, 살인범도, 전도사 약사도, 목사도 그녀에게 진심 어린 공감의 한마디 해준 적 없다. 그녀가 현재 어떤 심경인지,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이해하지 못한다.
'너의 기분 잘 알아' '네가 감정을 다스려야지' '힘내' '네가 생각하기에 달려있어' '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도 많아'
이런 말은 우울한 사람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금기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종찬이 다시 보인다.
종찬은 함부로 '힘 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당신의 기분 나도 이해합니다' 같은 소리를 하지도, '믿는다면 용서할 수 있죠'라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항상 곁에 있어준다. 그녀가 필요하다고 해도,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언제 어디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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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윤리적인 문제로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정혜신 박사이지만, 책 제목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 당신이 옳다, 라니. 우울한, 혹은 정신적 힘듦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도움이 되는 말이 있을까.
정혜신 박사는 정신적 어려움 앞에서 훈계나 옳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심지어는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해도 '그러면 안되죠'라고 말하면 안 된다 한다.
그냥, 그래요, 당신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용서요? 그런 거 왜 해요. 당신은 용서에 '실패'한 게 아니라 그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게 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내가 신애 씨였으면 그 딸년부터 잡아서 복수했을 거야.
신애가 그 말로 후련함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 죄인을 내 탓으로 돌리는 '신'보다는 나을게다. 내가 진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왜 판단해주는가. 나는 자식을 잃은 피해자일 뿐인데.
이 영화에서 내가 찾은, 신애에게 내린 비밀스러운 햇빛은 오직 종찬뿐이다. 아름답지도,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는 불편한 영화이지만 종찬은 항상 한켠에 조심스럽게 내린다. 크고 강렬하면서도 신애의 정면에 쏟아지지 않고 그녀가 편안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짝 내려앉은 햇빛. 이런 사랑도 있다. 아니, 이게 사랑이다.
당신이 밀양에서 찾은 비밀스러운 햇빛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