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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5. 2019

[마션]  X됐다고 생각이 들면, 일단 웃어라

웃음만이 당신을 구원할지니


화성에서 탐사 미션을 진행하던 도중, 모래폭풍에 날려온 안테나에 찔려 한 남자가 사망한다. 그의 팀원들은 그를 구하려 해 봤지만 그의 생체신호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정지된 상태. 더 지체하면 팀 전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지구 귀환을 선택한다.


하지만 화성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죽지 않았다. 안테나가 뚫은 자리를 피가 응고되며 막아 살아남은 것. 모래폭풍이 지나간 뒤 그는 홀로 화성 탐사기지로 복귀한다. 엄밀히 생각해봤을 때, 지구에서 구출선을 보낸다고 해도 최소 4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기지는 31일 동안 미션을 진행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식량, 산소, 전기 모두 4년을 버티기에는 부족하다. 절망적인 그 순간에 그는 기지를 둘러보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난 여기서 안 죽어.’






그는 끝까지 저항해 볼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모든 팀원의 음식을 모아보니 400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나머지는 재배하면 된다. 불모지 화성에서 어떻게? 다행히 그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이다. 그리고 기지에는 추수감사절을 위해 ‘조리하지 않은 생감자’가 있었다.


식물학 지식과 똥으로 키워낸 '화성산' 감자들  출처: 마션


그에게 닥친 것은 식량 문제 뿐만이 아니다. 감자를 키우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고, 당연히 화성탐사에 그 정도의 물은 보내지지 않았다. 그는 수소 연료를 분리해 불을 붙이는 방법으로 물을 만들고, 태양열 발전기를 확충하여 전기를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지구와 통신할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수백, 수천개의 위험들 중 하나라도 간과했다가는 그대로 사망이다. 그가 과학으로 화성을 조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확실히 나사는 아무나 들어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팍팍 든다.






사실 이런 종류의 ‘조난 생존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조난자가 이겨내는 정신적 고통이다. 캐스트 어웨이에서도 그랬고, 그래비티와 127시간에서도 그랬다. 홀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외로움은 실제의 고난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와트니의 정신건강이 걱정되는 화성 탐사 총책임자 카푸어가 민디 파크에게 질문한다. ‘정신적으로 어때 보여?’ ‘자길 금발 수염 선장이라고 불러달래요.’


이 배구공은 훗날 혼자 사는 연예인들 집에 죽치고 사는 곰돌이 인형이 된다. 출처: 캐스트 어웨이


와트니의 상황은 캐스트 어웨이의 척이나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척은 배구공 ‘윌슨’과 대화를 하고 스톤 박사는 이누이트족 ‘아닌강’과 대화하지만 와트니는 지구와 통신할 방법을 찾아내고 외로움을 이겨낸다. 와트니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1인 조난 영화는 악역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외적인 사투는 자연현상과 이루어지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내적 사투가 이루어진다. 내적 사투가 그 영화의 정체성을 만든다. 127시간은 인과 연을 다루고 그래비티는 ‘삶의 끝에서 찾은 관계의 의미’를 다뤘다. 마션은 무엇을 다루고 있나.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SF 재난영화’라는 평을 남겼다. 낙천, 유머. 하늘이 무너져도 허허 웃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놀라운 능력. 마션의 핵심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유머가 가져오는 불굴의 의지.


시각적 즐거움은 충분히 잘 재현해 냈지만 디테일한 즐거움은 역시 원작 쪽이 조금 더. 출처: 마션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각색이 쉽지 않았을, 앤디 위어의 원작 ‘마션’을 맛깔나게 버무려냈다. 소설의 시각화에 멋지게 성공한 것. 때문에 원작과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지만, 와트니의 생존기에 흥미를 느꼈다면 원작 소설도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와트니의 1인칭 생존기가 더 생생하게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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