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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3. 2019

[나를 찾아줘]권태를 극복한, 닉과 에이미의 러브스토리

끝장난 결혼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에이미의 눈물겨운 숨바꼭질


현실에 사는 부부를 보자. 따로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어 돈, 사랑, 권태, 외도, 가족, 미움 등 곳곳에 산적한 문제들과 싸워야 한다. 어느 하나 가벼운 주제가 없다. 혼자 살면 ‘외로움’ 하나만 감당하면 되는 것을.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 부부의 상당수는 폭력적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핀처는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를 통해 격렬한 싸움 끝에 부부가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과정을 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폭력(밀쳐내는 정도?), 정신적 고통, 그리고 법적인 공방은 있었지만 영화의 ‘닉’과 ‘에이미’는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 그들은 부부고, 원래 부부들은 그렇게 사는 거다. 결혼 생활은 칼로 물 베기니까.





모든 커플들이 그렇듯, 닉과 에이미도 처음에는 좋기만 했다. 닉은 능숙했고, 다정했다. 그는 키즈 블로거를 가장해 ‘만들어진 삶’으로 에이미를 학대하는 부모의 손에서 에이미를 구해낸다.


다정했던 시절, 도서관 데이트를 즐기는 닉과 에이미 커플  출처: 나를 찾아줘


그들은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추리 게임’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네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날 때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닉은 이제 에이미의 ‘추리 게임’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즐거워서 하던 게임인데, 이제는 게임이 ‘자기 남편이 얼마나 무심한 개자식인지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분명 무심했다.


무심한 것에 이유는 있었을 거다. 최악의 불경기에 닉과 에이미는 모두 해고되었다. 에이미의 부모님은 출판사와 갈라서면서 큰 빚을 지게 되었고, 착한 에이미는 집안 재산을 모두 부모님께 빌려준다. 닉은 다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뒹굴거린다. 마음에 ‘패배’가 자리 잡아버렸다. 안타깝지만, 이런 패배감은 너무 흔해서 그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원래 자기가 힘들면 주변 사람에게 무심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에이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 5주년 기념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성대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닉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300페이지짜리 다이어리를 쓰고, 보물찾기 게임을 업그레이드 해 그와의 추억이 있는 곳곳에 편지를 숨겨둔다.


정성을 다해 다이어리를 쓰고, 주기 전에는 살짝 그슬려서 빈티지함을 살렸다.  출처: 나를 찾아줘


그 과정에서 물론, 약간의 다툼은 있었다. 닉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에이미를 밀쳐내는 등 폭력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에이미는 참다못해 동네 친구에게 자신의 삶을 한탄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기억과 주장으로 법적인 공방까지 벌였지만 그들은 결국 함께 샤워를 하며 화해를 한다. 닉이 그토록 원하던 아이도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아이가 자라 독립할 18년 동안 그들은 화목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스릴러’가 주 무기였던 데이비드 핀처가 가족 영화를 만든 것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그는 얼마나 사소한 것들이 결혼을 망치는지, 무엇이 결혼을 구원하는지에 대한 그의 철학을 확고하게 담아 두었다.


결혼생활에서 전적으로 잘못한 것은 닉이다. 처음 결혼할 때는 정말 잘해줄 것처럼 굴더니, 해고가 되고 나자 이내 게을러졌다. 그녀에게 상의도 없이 자신의 고향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신 친구들과 나돌며 술을 마신다. 나는 타지에 와서 혼자 외롭게 있는데. 그래, 그걸 모두 용서한다고 해도 스무 살짜리 제자와 놀아나는 꼴은 보아 넘겨주기가 힘들다. 그는 나를 섹스의 도구로 보고 있다. 이 정도면, 에이미가 닉을 죽이겠다고 나서도 무죄라고 봐야 한다.


이런 기분이 들 때, 상대가 얼마나 혐오스러워지는지 여성분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거다. 출처: 나를 찾아줘



하지만 닉은 모든 것을 뉘우친다. 자신이 바람을 폈다는 것, 자신이 에이미를 무심하게 대했다는 것,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 그런데 남자들은 대체로 제대로 된 사과문을 작성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까 자꾸 여자친구가 ‘그래서 뭐가 미안한데’를 묻는 거다.


닉의 잘못은 컸지만 그 사과문은 에이미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의 그 모습이 돌아왔다고 확신하고 자신이 세웠던 깜짝 이벤트를 중단, 할로윈 코스튬을 입은 채로 닉에게 돌아간다.


그래도 사과 듣고 싶어서 한 달짜리 숨바꼭질은 좀 너무하지 않나. 출처: 나를 찾아줘


감독은 부부관계 이외에도 몇 가지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닉이 그냥 맘에 들지 않아 의심하는 경찰, 실제 죄의 유무보다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수사기관, 하나의 거짓말이 밝혀졌다고 닉을 매도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너무나 애틋한, 닉과 에이미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까지 이렇게 완벽하다니, 데이비드 핀처는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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