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만난 '영혼의 반쪽',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에, 자기가 나랑 결혼을 했어. 그런데 결혼 후에 정말 운명 같은 여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자기랑 살지."
"아니, 정말 운명이라니까? 막 없으면 죽을 거 같고, 놓치기 싫고, 눈앞에 아른거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 질문, 꽤 골치 아픕니다. 끌림은 이유가 없잖아요. 어느 날 직장에서 새로 만나게 된 사람이, 혹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람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여행지에서 마주친 낯선 이성이 미친 듯이 끌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어떡해요, 그 사람을 밀어내야지. 이성적으로는 그렇긴 한데 사실 사람은 이기적이라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너무 좋고 행복하기만 한 부부관계라면 딴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결혼은 지옥이잖아요. 언젠가 위기는 찾아올 거고, 때 마침 나타난 그 인연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니, 그런 끔찍한 고문이 어디 있나요?
<우리도 사랑일까>는 ‘새벽의 저주’, ‘스플라이스’의 여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사라 폴리 감독의, 감독으로서 두 번째 영화입니다. 겨우 두 번째 영화에 이런 때깔을 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네요.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여성의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Take this waltz입니다. 불륜의 우아한 표현이랄까요.
네. 불륜영화죠. 하지만 이 불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애매합니다.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감정의 기복.
때마침 찾아온 새로움의 유혹
익숙함에 배려를 잊은 상대에 대한 서운함
침묵 속에 갇혀버린 외로움.
사랑, 참 어렵습니다.
과실의 경중을 따져 단순한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매일 조금씩 죽어 벗겨지는 관계의 각질이 만든 환부가
불륜의 상처보다 괴롭지 않다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불륜에 빠진 마고를 욕하게 되겠지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에게 몇 번의 왈츠를 권하니까요.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
나를 행복으로 이끌려 손을 내밀어준다면 나는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요.
영화의 주인공, 마고(미셸 윌리암스)는 스물셋에 남편, 루(세스 로건)와 결혼하여 5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사랑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불륜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죠.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대니얼(루크 커비)이 다가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명적 만남이에요. 일 때문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의 옆자리에 앉고, 대화를 나누다 같이 택시를 탔는데 그는 바로 건너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약간은 억지스럽지만 놀라운 인연이라고 해 두죠. 이 영화는 시적인 영화니까요.
이 두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나눈 대화가 영화의 주제가 됩니다.
마고는 비행기가 무섭다고 해요. 정확히는 비행기 환승이요.
"나는 비행기 환승이 무서워요. 잘 모르는 곳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시간에 맞춰 환승 비행기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도 겁나요."
"도착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요?"
"길을 잃고는 공항의 버려진 터미널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서 썩어가겠죠."
"비행기도 놓치고?"
"아뇨, 비행기를 놓치는 건 괜찮아요."
"그럼 뭐가 두려운 거예요?"
"비행기를 놓칠까 봐 걱정하는 게 두려워요. 사이에 끼어서 애매한 상태가 되는 것이 두려워요."
이게 마고의 불륜에 대한 생각입니다. 새로운 사랑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에요.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두려운 겁니다. 제발 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같은 거죠. 그녀는 그 시험을 이겨낼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마고가 "나, 사실 남편이 있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공허하게 들립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거죠.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랑을 밀어낼 용기도 없어서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는 겁니다. 온몸으로 거절하는 듯 받아들이는 저 표현,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네요.
마고는 미친듯한 사랑에 빠졌지만, 남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습니다. 섹스는 안돼요. 그래서 그들은 상상으로나마 섹스를 합니다. 아니, 솔직히 저건 기만이죠. 차라리 섹스를 하는 게 낫습니다. '그래도 난 최소한의 윤리는 지켰어'라고 자위하기 위한, 마고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 행동처럼 보이네요. 몸을 주지 않는 대신 마음을 주니까요.
두 사람은 이미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아닌 척합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서로의 주위를 맴돌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절대 서로를 만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대니얼이 손을 뻗어 마고의 발목을 잡는 순간 마고는 정색을 하고 현실로 되돌아옵니다.
감독은 영화 초반, 구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합니다. 마고와 루를 잡을 때는 이렇게 두 사람을 평면적으로 담아내면서 안정된 관계임을 표현하죠.
마고도, 루에게 돌아가기 위해 아주 약간의 노력을 합니다. '몸을 만지지 않는 섹스'를 하고 집에 돌아온 마고는 루를 끌어안아요. 루는 요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안돼'라고 밀어내지만, 마고는 눈물을 터뜨립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유혹하려고 하고 있잖아. 당신은 왜 항상 받아주지 않는 거야? 이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아? 루는 황당한 표정입니다. 마고는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왜 당신은 눈치도 못 채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것을 지켜보는 우리들, 관객에게는 마고가 죄책감을 덜고 싶어 책임을 루에게 밀어 넣는 '수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결혼 생활은 행복하기만 할까요? 아무리 사랑스러운 커플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싸우게 되고, 언젠가는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영화는 그 권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어렸을 때는, 사랑을 불타는 정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또 특별한 감정을 느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면서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일이야. 나에게도, 저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다.
그래서 흔들림을 느낀 그 순간 이별을 통보했어요. 그렇게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내가 사랑을 느끼는데 뭐 어떻게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죠.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제가 '빈틈을 모두 메우러 다니는 미친놈'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내 행복만 추구하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의 저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마 그분들은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지금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예전에는 얼마나 더 엉망이었던 걸까,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예요.
이제는 새로운 인연이 찾아와도, 권태가 찾아와도 그걸 그렇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아요.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응, 또 한 번 권태가 왔구나. 조금 더 노력해서 다시 예전처럼 되돌려야겠다. 권태는 이제 차라리 나의 소홀함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파민의 공격에 면역이 된 거죠. 그래서 이제는 '평생 너만을 사랑할게'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모든 여자를 돌처럼 볼 수는 없겠지만. 나한테는 당신의 행복이 가장 소중해.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난 안 해볼 후회가 없을 정도로 온갖 후회를 다 해봤거든. 또 속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지.
삼각관계의 결말은 직접 영화를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뻔해 보이죠? 이런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엔딩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봐야 하는가 싶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듯 이 영화는 각본, 영상과 연출, 연기까지 섬세한 균형이 돋보이는 한 편의 시 같은 영화예요. 장면과 장면 사이에 녹아든 그 '행간'의 이야기는 글로는 옮기지 못합니다. 옮겨서도 안되고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분명히 다른 법이니까, 사랑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 작품은 꼭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