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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6. 2024

싱가포르 여인 (7)

L 은 산업공단과 데자루 사이에 있는 호텔에서 9시 반에 출발했는데, 같은 조호르 주에 속하는 JB이건만 자그마치 1 시간이 넘게 걸렸다. 서쪽 부킷인다 너머 두 번째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다리 쪽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족히 두세 시간은 훌쩍 넘었을 듯하다. '인다'가 말레이어로 아름답다는 뜻이어서 경관은 좋지만, 너무 멀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한 곳은 JB 북쪽에 있는 ‘이온’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쇼핑몰 앞이었다.


이온은 일본에서 진출한 유통업체인데, 어느새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한국의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말레이시아 유통업을 선점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몽골과 라오스처럼 말이다.


이온에서 택시를 타면 얼추 약속시간인 11 시 언저리에 JB센트랄에 도착할 성싶다.


말레이시아는 온 천지가 야자수나무로 덮인 듯하다.

수도인 쿠알라 룸푸르에서 조호르 공항까지 국내선을 타고 온 적이 있는데, 이륙하자마자 창 밖으로 드넓게 야자수 숲이 펼쳐졌고, 비행시간 내내 말레이반도 전체가 온통 야자수 일색이었던 게 아직도 꿈같이 생생하다. 야자수 숲을 보자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던지.


JB까지 이어진 이 도로도 마찬가지다. 길 양 옆으로 빼곡하게 야자수가 심겨 있다. 가는 길에 양 옆이 트인 지대를 지나면 저 멀리 지평선까지 온통 야자수 세상이다.

새삼 L은 궁금했다. 같은 종려과 수종인데, 코코넛과 대추야자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이를테면, 코코넛은 두꺼운 외피를 벗겨야 야자유와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는데, 대추야자는 대추처럼 한가운데 씨앗이 있고 과육을 즐긴다. 전혀 다른 열매가 형제라고? 기어코 인터넷의 백과사전을 뒤졌다.


“종려나무과에 속하는 야자수는 수종이 무려 2,500 여 가지나 된다. 열대의 리조트에서 볼 수 있는 키 큰 야자수는 코코넛 야자수 coconut palm라고 불린다. 반면 중동지방에 흔히 있는 대추야자수는 ‘date palm’이라 불린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코코넛 야자수는 주로 팜 오일 생산이 주목적이다.”


그제야 엇비슷하게 생긴 야자수가 조금씩 구분이 되는 듯하다. 중동에서는 길가에 종려나무도 많은데, 대추야자와 같은 수종이라 서로 닮았지만, 잎이 난 모양은 확연히 다르다. 제주 상가리 야자수숲에 갔을 때다. 거기엔 야자수, 종려나무와 더불어 소철나무도 같이 자라고 있었다. 모두 어슷비슷하게 생겨서 한참 지켜봤다. 가까이서 자세히 살피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말레이시아의 야자수는 대기를 맑게 하는 허파의 역할을 하고, 팜오일은 말레이시아의 주요 수입원이라고 한다. 참 근사한 녀석인 듯하다.


이국의 창 밖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공기는 더없이 맑고 미세먼지라곤 없는 이 푸르른 하늘.

L은 음악을 들으면서 갔지만, 야자수가 연출한 초록색 잔치에 더 끌렸다. 음악은 버스의 소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마음은 줄곧 차창 밖으로 향했다.


JB로 가는 길에 L은 그만 야자수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L은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그랩을 이용해서 택시를 호출했다. 싱가포르에서 개발된 차량호출 앱인 그랩은 이미 동남아에서 빅히트를 치고 있다. 그랩을 모르는 외국인만 택시를 이용할 뿐.


일반 택시가 손님을 싣고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카카오택시 같은 그랩을 이용하면, 일일이 목적지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요금도 미리 정해져서 기사가 우회하여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경우도 없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한국의 카카오택시도 교통체증과 상관없이 호출하는 즉시 요금이 정해지는 시스템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그랩의 흠이라면 종종 지도의 정확도가 좋지 않은지 차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출한 승객의 위치와 주변 도로의 여건을 익히 안다면 다행이지만, 기사 역시 초행길이면 앱이 제공하는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는 L 주위를 무려 두 바퀴나 돌았다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앱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얼마 전에 한국의 티맵과 그랩이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빠른 길 찾기의 대명사인 티맵의 노하우를 그랩이 장착하면, 그랩의 유일한 단점을 극복하고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 듯하다.


결국 5분 내로 도착한다는 차를 얼추 15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오랜만에 S를 만나는 게 마음대로 안 되는 듯싶어서 L은 슬쩍 조바심이 났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기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한 L로서는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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