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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nkhur Sep 06. 2024

싱가포르 여인 (8)

S 는 L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딸과 같이 간다고 귀띔을 했지만, 모처럼 만나는데 군식구를 데려온 셈이니까. 혹시 오해하지나 않을까, 저으기 걱정도 들었다.

정확히 10 분이 지난 시각이다. 처음엔 긴가 민가 했는데, 저기서 잰걸음으로 오는 L이 보인다. 실루엣만 봐도 기억날 것 같았다. 5년 만에 만나는 두 친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야, L.  너무 반가워. 이게 얼마만이야? 그런데 넌 어째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네?”


진심이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여전히 뱃살도 없고 살짝 그을린 얼굴이 외려 더 건강해 보였다.


"아냐, 그새 흰머리도 많이 나고 주름도 잔뜩 늘었는데, 뭘. 이제 나도 중늙은이가 다 됐어."


S는 내처 얘기를 이어갔다.


“아냐, 똑같아. 아, 참. 딸은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링깃 좀 환전하러 ATM 기에 갔어. 곧 올거야. 그나저나 딸까지 데려와서 미안!

내가 워낙 길치라서 여기 오려니 사실 너무 불안했거든. 괜찮지?”


L은 뜻밖의 말을 던져왔다.


“둘이서만 보고 싶었는데?”


순간 S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L은 그냥 해본 소리라며 둘러댔지만, 그새 넉살이 좋아진 건지 이런 농담도 다 하다니. 몇 마디 안부를 더 주고받는 사이 딸과 같이 온 친구가 저기서 걸어오는 게 보인다.


딸은 L 앞에 서자마자 대뜸 인사부터 한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엄마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일사천리로 말을 잇는다. 미리 연습이라도 단단히 하고 온 것처럼.


"카톡의 프로필사진을 미리 봐서 바로 알아봤어요. 얘는 제 친구 미셀이에요. 그럼 우리는 따로 갈 테니까 두 분이서 오랜만에 좋은 시간 보내세요.”


S는 미리 사진을 보여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배 아파 낳은 딸이 이렇게나 쿨한지 미처 몰랐다. 생각할수록 기특하게 느껴진다. 잘 자라줘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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